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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해운업 구조조정, "모두 청와대만 바라보는 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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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머니투데이 이코노미스트가 금융계와 산업계, 정계와 학계 등의 관심 있는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하태형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현대경제연구원장)]

머니투데이

하태형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사진=홍봉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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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해운업 구조조정은 모두 청와대의 결정만 바라보고 있는 형국입니다."

하태형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현대경제연구원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해운업 구조조정에 대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해운업 구조조정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바로 현대그룹과의 깊은 인연때문이다.

하 고문은 지난 2014년 현대경제연구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현대상선 및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되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장본인이다. 1년 남짓한 기간 경제연구원장으로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모그룹인 현대상선의 몰락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특히 과거 젊은 시절 현대중공업에 재직하면서 현대와 깊은 인연을 맺었던 그이기에 현대그룹의 위기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사뭇 남달랐다.

◇청와대와 정부의 결정만 바라보는 비정상적인 구조조정

하 고문은 "개별기업의 구조조정을 두고 모두가 청와대의 결정만 바라보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현재 산업은행이 5%이상 지분을 가진 비금융기업만 해도 377개나 됩니다. 산업은행이 이처럼 과도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산업은행장을 임명하는 정부가 나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는 지난해 KDI에서 발간된 '부실대기업 구조조정에 국책은행이 미치는 영향' 이라는 논문을 언급하며 국책은행은 일반은행에 비해 평균 2.5년이나 구조조정 대응이 느리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정부와 국책은행은 구조조정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가 개별기업의 구조조정을 결정하려다보면 경제논리를 벗어나 정치·산업·언론·노조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개입될 수 밖에 없습니다. 노조는 노조대로 광화문에서 시위를하고, 언론에서는 감놔라 배놔라 여론을 좌우하고, 국회에서 로비활동까지 이뤄지다보면 효율적인 구조조정은 불가능합니다."

하 고문은 전 현대경제연구원장을 역임하기 전 수원대학교 금융공학 대학원장을 역임한 독특한 이력을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경제전문가인 동시에 금융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해묵은 관치금융의 폐해에 대해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뿌리깊은 관치금융 관행으로 인해 현재 개별기업의 생사여탈권이 채권은행이 아닌 청와대가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해운업 구조조정에 있어서도 비전문가들이 청와대 별관에 모여 결정하고, 모두가 이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과거 우리 경제가 성장할 때에는 관치금융은 효율적인 자원 배분으로 고도 성장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 산업이 고도화되고 구조조정의 시기에 와있는 지금에 와서는 그러한 유산들이 오히려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

◇ 국적선사 필요 없다

해운업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면 으례 이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바로 국적선사 논리다. 국적선사가 있어야 배도 들어오고, 국내 항만산업도 유지되며, 전시 상황에는 식량과 물자를 나를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하 고문은 이는 논리적이지도 않고, 현실과 부합하지도 않다고 잘라 말했다.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경제 시대에 국적선사를 주장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입니다. 대개 국적선사 존속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해운사의 배가 마치 바다에 떠있는 우리 영토와 같다며 반드시 보유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해운업에 관계된 인사들의 이익에 편승한 편협하고 국수주의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이미 글로벌 해운 시장은 공급과잉 상태이며, 물동량만 존재한다면 국적에 관계없이 어느 항만이든 배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국적선사가 반드시 있어야 배가 우리 항만에 들어온다는 논리는 맞지 않습니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대규모 국적선사가 없는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 주요 교역국가들의 항만은 이미 망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역의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는 한 국적선사가 없이도 배는 얼마든지 들어옵니다."

◇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단일 선사로 합병해야

전 현대경제연구원장으로서 현재 양대 해운사를 모두 살리는 게 맞나, 아니면 합병해야 하는가 물었을 때 하 고문은 쉽지는 않겠지만 합병하는 쪽에 무게를 뒀다.

"현재 글로벌 해운산업의 트렌드와 중장기적인 시각을 고려할 때 하나의 해운사로 합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중국도 합병을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했고 글로벌 주요 해운사들도 M&A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우리도 그러한 방향으로 가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 더 나아가 만약 단일 선사로 합병해도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하면 미국이나 싱가포르처럼 과감히 국적 선사를 포기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현재 세계 경제는 장기 저성장이 불가피합니다. 특히 최근 들어 교역증가율이 세계 경제성장률을 하회하는 교역 불황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물동량의 감소를 의미하는데 앞으로 이러한 경향은 미국의 제조업 회귀, 중국의 저성장, 3D프린터 등 신기술의 발전 등으로 장기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글로벌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경쟁력이 바닥난 양대 선사를 모두 살리는데 세금을 쏟아붓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는 꼴입니다."

한편 일각에서 우리가 먼저 구조조정을 하면 남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는 이른바 '버티기' 전략에 대해서도 하 고문은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물론 현재 해운업계가 글로벌 치킨게임에 돌입한 상황이므로 다른 업체가 죽을 때까지 무작정 버텨보자는 생각도 아주 틀리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계 기업을 연명시키는 데는 막대한 세금이 들어갑니다. 만약 이렇게 버티자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당신 돈(=세금)을 집어 넣으라고 한다면 감히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무책임한 주장일 뿐입니다."

더불어 그는 그동안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서 양대 해운사의 경영진이 저지른 경영실패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양대 해운사는 모두 알짜배기 자산을 모두 매각한 상황입니다. 통상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비핵심자산을 먼저 매각하는게 기본인데 워낙 다급한 상황이다보니 앞뒤 안가리고 핵심자산을 먼저 팔아버리는 패착을 범했습니다. 결국 빈껍데기만 남은 상황에서 아무리 지원을 확대해서 회생을 시킨다해도 이익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 구조조정 전문 사모펀드의 역할 절실

하 고문은 해운업 구조조정 이슈에 대해서 시장경제의 원칙을 견지하면서 특히 사모펀드의 역할을 힘주어 강조했다.

"미국의 경우 한계 기업이 나타날 조짐이 보이면 주채권은행은 사모펀드에 채권을 곧바로 매각을 합니다. 사모펀드는 채권은행으로부터 인수한 기업을 경쟁력이 있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나누고, 매각할 부분은 매각하고, 살릴 부분은 살려서 기업의 회생을 적극 추진합니다. 이렇게 해서 기업이 회생을 하면 사모펀드는 다시 이를 매각하여 차익을 남깁니다. 그러므로 사모펀드만큼 구조조정에 있어서 전문가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재 해운업이나 조선업의 구조조정을 감당할 만한 규모의 사모펀드가 존재하지 않고, 만약 사모펀드에 맡길 경우 외국계 사모펀드에 맡길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모펀드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습니다. 특히 외국계 사모펀드에 매각했다가는 국부유출이니 하면서 엄청난 반대 여론에 부딪칠 겁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사모펀드의 역할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하 고문은 현재 해운·조선·철강 뿐만 아니라 주력산업 전반에 있어서 구조조정의 태풍이 몰아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가 담당해야 할 역할에 대해 매우 명확한 입장을 제시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청와대 별관에 모여 어느 기업을 살릴지 말지를 고민하는 게 아닙니다. 구조조정이라는 것은 채권은행과 사모펀드 등 전문가 집단에 일임해야 합니다. 다만 정부는 구조조정시 발생하는 고용 충격에 대비해 실업급여 등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고, 취업 알선 및 취업 정보 공유, 구직을 위한 사무실 제공 등 다양한 인프라를 갖추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 고문은 현재의 구조조정 위기를 계기로 향후 정부가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일에 매진하기를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우리가 금융 하나만이라도 선진국과 같이 정말 제대로만 갖춘다면 우리 경제와 산업의 미래는 희망이 있습니다. "

최성근 이코노미스트 skchoi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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