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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기업 구조조정]야당 압박에 한은도 반격…정부 ‘구조조정 우회전략’ 수정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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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조선·해운 구조조정 재원을 마련하려는 계획이 ‘궤도 수정’을 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시급성’을 들어 국회의 책임 추궁을 우회하려던 정부의 움직임에 야당이 제동을 걸고 나선 데 이어 한은도 다시 부정적인 태도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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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 첫 회의를 열며 흐름을 타는 듯했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시간을 들여 국회 논의를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에 발권력을 이용하려면 납득할 만한 타당성이 필요하다”는 이주열 한은 총재의 4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기자간담회 발언은 한은이 정도를 비켜가려는 정부에 끌려가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총재는 이 자리에서 “손실 최소화 원칙에서 보면 아무래도 출자보다 대출이 부합한다”며 한은 독자안까지 예시하는 등 단호함을 보였다.

‘여소야대’ 정치지형에서 야당이 정부 압박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도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의장은 지난 4일 “묻지마 자본확충은 국민을 더 불안하게 하고 경제 미래를 더 어둡게 할 수 있다”며 “구제금융과 자본확충이란 미명하에 한국은행 발권력을 밥먹듯 동원하는 길을 열겠다는 발상이라면 국회는 결코 그냥 지켜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당선자 역시 정부에 “논의의 순서를 지키라”고 지적했다. 최 당선자는 “2~3년 전부터 구조조정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계속돼왔는데 정부가 지금까지 문제를 계속 끌어온 원인부터 규명돼야 할 것”이라면서 “대주주에게 최대한 책임을 지우는 방안 등을 모색하고 기업을 회생시킬 것인가 여부를 따진 후에 구조조정 재원 규모와 마련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과 정치권의 태도가 강경해지면서 한은에 기대 구조조정 자금을 마련하려던 정부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 총재의 태도를 보면 법 개정이 필요 없어 우선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던 한은의 수출입은행 출자, 산업은행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 매입도 쉽지 않게 됐다.

백웅기 상명대 교수는 “한은의 우려대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흔들리면 나중에 한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할 때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한은의 권위를 지켜주는 선에서의 ‘폴리시 믹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를 우회하는 전략이 먹혀들기 어려운 상황이 조성되자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처음으로 거론했다. 다만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20대 국회 시작 후 추경안을 만들어서 논의하면 이미 7~8월이 될 텐데 얼마 후 어차피 본예산 시즌”이라면서 “추경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한은과 기재부 등은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 첫 회의 때 금융위가 제시한 시나리오별 재원 규모 추정치를 놓고 실무진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어차피 한은에 큰 부담을 지울 수 없고 구조조정 자금의 상당 부분을 재정으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정부가 국회에서의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추경(재정)을 통하거나 공적자금을 통하면 국가 돈을 쓰게 되고 그러면 책임 문제가 나오니까 (재정·공적자금을 피하기 위해서) 관료들이 한은의 팔을 비틀었다”면서 “구조조정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정부가 야단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 국회에 가서 제대로 설명하고 설득하면서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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