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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이주열 “자본 확충, 출자보단 대출이 낫다”… 정부 기대에 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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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양적완화’ 한은 또다시 시각차

‘한국판 양적완화’를 둘러싼 정부와 한국은행이 날선 공방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과 관련해 출자보다는 대출이 낫다면서 ‘타당성’과 ‘손실 최소화’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했다. 이는 한은의 종전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출자를 기대하는 정부의 입장과는 격차가 크다. 정부와 한은 등 관계기관이 참여해 지난 4일 첫 회의와 함께 출범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 역시 앞으로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일보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위쪽)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을 마치고 5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앞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4일(현지시간) 현지의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기자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인천공항=연합뉴스, 프랑크푸르트=공동취재단


◆이주열 한은 총재, “출자보다 대출이 중앙은행 원칙에 부합”


이 총재는 4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기업 구조조정에 발권력을 이용하려면 납득할 만한 타당성이 필요하고, 중앙은행이 투입한 돈의 손실이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기본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 참석차 현지에 머물고 있다.

이 총재는 손실 최소화 원칙과 관련해 “중앙은행이 손해를 보면서 국가 자원을 배분할 권한은 없다”며 “한은법상 확실한 담보가 있어야 발권력을 동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실 최소화 원칙에서 보면 아무래도 출자보다 대출이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출자는 담보 없이 지원하는 것인 만큼 담보대출을 통해 국책은행이 자체적으로 자본 확충에 나설 수 있도록 돕는 게 한은의 원칙과 맞아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이는 수출입은행에 대한 직접 출자, 조건부자본증권(코코본드) 매입을 통한 KDB산업은행 증자 간접지원 등에 발권력 동원을 요구한 정부 시각과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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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는 한은이 지원금을 회수하고, 손실을 최소화한 방식으로 2009년 운영된 자본확충펀드를 사례로 들었다. 당시 한은은 은행에 채권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은행은 그 자금으로 자본확충펀드를 만들어 재무 건전성을 높였다. 이 총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민간회사인 AIG나 제너럴일렉트릭 등을 지원할 때 출자보다 지원금 회수가 가능한 대출 방식을 주로 택했다”고 설명했다. 한은 측은 앞으로 협의체 논의에서 자본확충펀드를 적극 건의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총재는 출자방식을 완전 배제하지 않겠다며 여운을 남겼다. 그는 “타당성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밝혔다. ‘타당성’을 언급한 것은 한은이 최악의 경우 손실을 볼 수 있는 출자에 나설 수 있도록 국민적 합의나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속내를 밝힌 것으로 읽힌다. 이 총재는 그러면서 “어느 나라를 봐도 구조조정은 정부의 주된 역할”이라고 선을 그었다. 대출은 해줄 테니 나머지는 정부가 처리해달라는 주문인 셈이다. 과거 발권력 동원 때마다 특혜시비가 따라다닌 선례로 미뤄 이번에도 직접 출자에 나섰다 자칫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대출을 고집하게 된 배경으로 꼽힌다.

◆정부 “협의체 운영에 혼란 줄 수 있다” 우려

정부는 전날 협의체를 통해 정책 공조를 다진 직후 한은 측이 이견을 보인 만큼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 총재 발언은) 전날 유일호 부총리가 언급한 국민적 공감대를 얻겠다는 말과 같은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본다”면서도 “협의체가 운영되고 있는 와중에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은 혼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동안 구조조정의 호기를 잃지 않으려면 서둘러 ‘실탄’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도 거들고 있다. 김광림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최근 “국회 동의를 받지 않고 정부가 할 방법이 있다”며 “돈이 구조조정에 빨리 투입될 수 있도록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산은과 수은의 증자를 직간접으로 돕는 게 가장 속도감있게 자본확충을 해결하는 방안이라는 게 정부 측 주장이다. 사회적 공감대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한은과 달리 협의체에서 하루속히 결론을 내리고 이를 국회에 설명하며 국민적 공감대를 획득하자는 입장이다. 당장 법 개정 등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에 매달려서는 ‘골든타임’을 놓친다는 논리를 편다.

정부 입장에서는 한은의 대출도 그리 마뜩지 않다. 돈을 빌리려면 담보나 보증을 서야 하는데, 재정 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황계식 기자, 세종=안용성 기자 cul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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