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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숫자만 있고 비전 없는 구조조정…수십조 혈세낭비 전철밟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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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금 투입 등 재무구조 개선 초점

전문가 실사 등 산업재편 논의 부족

빚 줄이기만 집착땐 주기적 부실 요인


‘인력 ○○○명 추가 감원, 자산 ○○조 매각, 비용 ○○○억원 추가 절감, 공적자금 ○○조 투입…’

정부가 조선ㆍ해운 구조조정을 위해 내달말까지 국책은행에 5조~10조원의 자본확충을 추진중인 가운데, 산업계 전반에서는 수십년째 변하지 않는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방식이 부실 재발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산업 환경과 시기가 변했지만, 정부의 구조조정은 30년전과 똑같이 자산 매각과 인력감축,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전문가 실사와 컨설팅을 통한 구조조정 업종에 대한 비전 제시는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와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이 경쟁력은 있지만, 돈이되고 팔기 쉬운 알짜 자산매각과 부채비율 축소 등 재무 건전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구조조정의 효과는 반감된 채 오히려 업종전반의 동반 부실을 초래하는 등 여러 부작용만 낳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4년전 대우조선해양 처리를 미루다 결국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까지 동반 부실해진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이때문이다.

빚 줄이기’에만 집착하는 정부의 구조조정방식이 주기적 부실과 수십조 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비판의 근거는 지난달 26일 정부가 발표한 조선과 해운업 구조조정 방식이 낯설지 않다는 데 있다.

멀게는 30여년전인 1980년대, 가장 최근에는 2009년에 이미 동일한 방식의 구조조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조선과 해운은 1970년대 터진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1980년대 장기불황시기를 맞았다.

당시 공급과잉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정부는 1984년 해운산업합리화 조치를 통해 기존 63개 해운선사를 17개로 통폐합했고 참여업체엔 상환유예,신규자금 등 금융지원과 세제감면 혜택을 줬다.

1990년까지 지원된 금융지원만 약 2조 8000억 원에 달하고 조세감면 혜택도 142억원에 이르렀다.

업체들도 비주력 계열사 매각ㆍ부실 계열사 정리ㆍ부채 감축 등 재무구조 개선에 집중했다.

이후 1988년이 되자 해운운임이 상승하며 해운업은 구조조정 효과가 발휘되는 듯 했다. 하지만 효과는 채 20년도 가지 못했다.

2008년 글로벌 위기가 오면서 또 다시 해운업종은 불황을 맞았고 2009년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조선업도 1987년 정부의 ‘합리화 조치’가 단행되면서 대우조선(현 대우조선해양), 인천조선(현 현대삼호중공업),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는 자금지원 및 세금감면 혜택을 받았다. 이후 조선업계는 ‘세계 1위’의 명성을 얻게 됐지만 위기는 또 다시 찾아왔고, 구조조정의 상시화에도 부실은 커져만 가고 있다.

현재 한진중공업,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 5개 부실 조선ㆍ해운사의 제1금융권 위험 노출액(익스포져)은 특수은행 23조원과 시중은행 3조2000억원 등 모두 26조원에 달한다.

상황이 계속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시대변화를 감안하지 않은 묵은 구조조정 방식에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변화 속도는 빨라졌고 기업상황도 이전과 다르지만 여전히 30년 전 구조조정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지금의 기업 구조조정은 재무적 구조조정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산업 재편 비전을 함께 제시해야 하는데, 각 부처간 이해관계가 달라 신속한 구조조정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조선업산업은 1989년 ‘조선산업 합리화 조치’ 이후 중국의 부상과 미국 경기의 호황 등을 딛고 호황을 만끽해 왔지만, 이후 중국 조선산업의 성장과 전 세계적인 공급과잉과 수요감소 수요와 경쟁 구도의 변화에 전혀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양적 성장에 집착해 오다 질적 성장을 등한시 한 측면이 없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구조조정은 단순히 금융의 시각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닌, 산업 구조의 개편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런 위기감에서 정부는 부랴부랴 업계 중심으로 선종별 수급전망, 국내 조선업 전반의 미래 포트폴리오 및 업체별 최적 설비규모, 협력업체 업종전환 방안 등 제시를 위한 컨설팅을 추진키로 했지만, 대응이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박사는 “구조조정이 제대로 되려면 민간의 자금공급능력이 살아나야 한다”면서 “현재 우리나라는 부실채권(NPL)시장이 성숙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참여할만한 헤지펀드, PEF(사모펀드)도 거의 없다. 매번 막대한 자금퍼주기 논란을 피하려면 자본시장 육성에 대한 정책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정순식·황혜진 기자/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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