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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엄빠도 즐거운 ‘육아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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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목수·농부 이벤트에 이불 두르고 ‘와신 육아’… 사춘기는 ‘당구’로 극복?

정부가 부랴부랴(!)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덕분에 이번 어린이날 연휴는 ‘황금 연휴’가 됐다. 뜻밖에 찾아온 기회에 쾌재를 부를 이도 있겠지만, 뜻하지 않게 ‘빨갛게’ 된 날에 벌써 머리가 아픈 부모도 있을 것이다. 대단한 것이든 대수롭지 않은 것이든 누구나 마음속에 어떤 비법 하나쯤은 품고 산다. 제 존재를 통해 수행해가는 자식 양육 문제 역시 그렇지 않을까. 인터넷에 무수하게 많은 충고가 넘쳐나지만 육아에는 정답이 없고, 아이를 키우는 일에 정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참고해봄직한 사례가 있을 뿐이다. <한겨레> 기자 5명의 특별한 ‘육아 레시피’를 공개한다. 더 대단한 건 없다. 그저 사랑은 실천을 통해 당구대를 거쳐 괴물과 공룡의 모습으로 반말하면서 온다고나 할까. _편집자


사랑은 DIY 침대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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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사랑은 실천이라 했다. 아이 사랑도 누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다. 육아 역시 일종의 DIY(Do It Yourself)인 셈이다. 아빠는 세상에 하나뿐인 아기침대를 꿈꿨다. 아이가 거기서 천사처럼 새근새근 잠들 것이다. 아빠는 기꺼이 ‘DIY 목수’가 됐다.

2011년 8월22일, 아기침대 제작에 돌입했다. 큰딸이 태어나기 무려 다섯 달 전이니, 첫아이에 대한 설렘의 크기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우선 설계도를 그려야 했다. 안전함을 담보할 만큼 튼튼하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이어 소규모 목재 전문 판매업체에 인터넷으로 나무를 주문했다. 350~950mm 적삼목 판재 37개가 도착했다. 나사못은 왠지 첫아이에게 큰 위협이 될 것 같았다. 일종의 나무못인 ‘목심’을 100개 주문했다. 침대 바닥에 붙일 ‘튼튼바퀴’ 4개도 주문했다. 아이가 잠들어도, 아내가 침대를 손쉽게 움직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상처 날 만한 곳이 있으면 안 됐다. 200곳 이상 되는 나무의 모서리를 모두 사포로 갈아냈다. ‘클램프’로 침대의 각을 잡고, 나무를 하나하나 이어붙였다. 아이가 누울 상판을 자르기 위해 전기톱(직소기)까지 동원했다. 상판 아래로는 기저귀 같은 것을 놓을 수납 공간을 만들었다. 당시 일기에는 ‘재인이가 집에 올 날이 그리 멀지 않아 어제부터 한나절을 꼬박 침대 만드는 데 썼다. 영 힘을 못 받던 목심을 모조리 뽑았다. 대신 손마디가 아프도록 나사못을 촘촘히 꽂았다. 침대 바닥이 될 깔판과 좌우 난간, 바퀴만 조금 더 튼튼히 잡으면 끝. 재인양, 아빠표 친환경 원목침대에서 예쁜 꿈 꾸세요~’라고 적었다. 아이가 그 안에서 꿈꾸고, 자랐다.

첫아이였던 까닭일까? 아직 30대 시절이라 체력이 받쳐줬을까? ‘아이 사랑 이벤트’는 계속됐다. 작은 테라스가 있던 집이라 여러 채소들을 심었다. 청경채, 오이, 호박, 가지, 딸기, 토마토 같은 것들이다. 그중 청경채는 갈아서 친환경 이유식 재료가 됐다. 부쩍 자란 아이가 나중에는 직접 딸기를 따먹었다. 아이와 함께 물을 주고, 그렇게 자란 상추와 오이를 아이가 따오면 저녁 식탁에 올렸다. 아이가 조금 더 자란 뒤에는 자전거 뒤에 ‘트레일러’를 연결해 아이를 태우고 종종 나들이를 떠났다. 육아의 추억은 이제 아이와 아빠의 ‘이야기’가 됐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큐의 곧은 마음, 당구대의 넓은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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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내게 미쳤다고 했다. 2년 전 아내와 초등학교 6학년, 4학년인 아들 둘과 함께 세종시 조치원읍으로 거주지를 옮길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그랬다. 다들 서울로 오려는 판에 지방행이라니…. 나는 되레 서울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아파트값 상승과 사교육을 비난하면서도 스스로 발을 깊숙이 담그는 그 모순. 우리 가족의 삶을 재구성하려면 결단이 필요했다.

아파트값이 서울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 지방 소도시의 삶은 많은 것을 가능케 했다. 그중 하나가 석 달 전 거실에 ‘영접’한 당구대다. 덕분에 둘째아들 상훈이한테 새로운 애칭이 생겼다. 그 이름도 명예로운 ‘상드롱’이다. 지구별에서 당구 스리쿠션을 가장 잘 치는 선수 가운데 한 명인 벨기에의 프레데리크 쿠드롱의 이름을 빌려왔다. 화려하고 거침없는 공격력을 자랑하는 그는 토르비에른 브롬달, 다니엘 산체스, 딕 야스퍼스와 함께 스리쿠션계 ‘4대 천왕’으로 불린다.

상드롱은 처음 큐를 잡을 때부터 비범했다. 워낙 자세가 안정된 덕에 초보자가 범하기 쉬운 큐미스(이른바 ‘삑사리’)도 거의 저지르지 않고 공 두께 조절도 곧잘 한다. 대학 시절 나한테 “포켓볼 치자”며 대범한 도전장을 남발한 구력 20년의 아내도 상드롱한테는 턱없이 무너진다. 역시 그 아비에 그 아들이다. 처음엔 ‘조치원 당구 신동’이던 그의 애칭이 글로벌화한 배경이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온갖 무기로 적을 베고 쏘아 죽이는 게임에 몰두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근육과 신경을 이용해 큐로 공을 정밀하게 맞히는 과정에서 기쁨을 얻는 게 한 인간의 성숙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아날로그 세대인 나는 믿는다. 그래서 매일 저녁밥을 먹고 나면 “상드롱, 한 게임 할까?”를 외친다. 혹시 아는가. 20여 년 뒤 내가 세계적인 당구선수 상드롱의 매니저라도 하고 있을지….

변수는 있다. 만 12살 상드롱의 마음에도 조금씩 거센 바람과 성난 파도가 닥쳐온다. 내가 당구대를 영접하던 즈음 그는 사춘기를 영접하기 시작한 듯하다. 상드롱이 공의 둥근 마음과 큐의 곧은 마음, 당구대의 넓은 마음을 갖춘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케 하는 것도 내 몫이리라.

전종휘 <한겨레> 디지털부문 기자 symbio@hani.co.kr

‘입’으로만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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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양보다 질”이라는 말을 증오한다. 워킹맘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라는데 듣기만 해도 피로가 몰려온다. 엎어치나 메치나 질 높은 육아를 위해선 일할 동안에 체력과 정신력을 남겨두어야 할 텐데 그런 에너지 비축 행위가 허용되는 직장이 얼마나 있단 말인가. 육아의 양도 질도 체력과 시간, 정서적 에너지가 좌우한다.

어쨌거나 가장 많은 육아 에너지가 소요되던 우리 아이 서너 살 시절, 집 안팎으로 내 에너지를 요구하는 채권단이 가득하다고 느끼던 때에 혁신적인 육아 기술을 발명하고 널리 보급해 주변을 이롭게 하기 이르니, 이름도 (성적) 에너지가 넘치는 ‘오럴 육아’ 혹은 ‘와신 육아’의 창달이다.

실은 와신 육아법은 가족의 눈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누운 자세로 주말 1박2일을 버티는 많은 아버지들이 이미 시연한 바 있다. 모성애가 가득한 기자는 여기에 누워서 입으로만 떠드는 ‘주둥아리 육아’를 동반함으로써 아이와 정서적 유대를 강화함은 물론 아이의 언어 발달에도 크게 공헌했다고 자부한다.

왜 아이들은 같은 놀이를 반복하는가. 뽀로로가 에디를 만난다. 에디는 크롱의 집에 놀러 가자고 한다. 크롱 집에서 다 같이 파티를 연다. 크롱이 갑자기 상을 엎어버리고 ‘크롱! 크롱!’ 하고 외친다. 화가 난 뽀로로가 집을 나가면 에디가 찾으러 간다. 다시 처음부터 반복. 버퍼링의 향연이라 할 수 있는 놀이에 동참하다보면 잠이 쏟아지고 밤 9시는 아직 너무나 멀다는 사실이 원망스럽다. 결국 인내심을 갖고 해야 하는 놀이는 별일도 아닌 걸로 아이를 혼내거나, 5분만 입 다물고 있으면 500원을 주겠다는 둥의 비교육적 회유로 끝맺게 된다.

이런 정서적 학대는 집에만 오면 바로 눕는 습관을 가짐으로써 방지할 수 있다. 누워서 아이가 팔을 빼가지 않도록 이불을 둘둘 감은 뒤 아이에게 장난감을 다 가져오라고 해야 한다. 아이의 놀이에 즐겁게 동참한다. 입으로만.

단언컨대 육아 레시피는 없다. 모든 부모들은 자기 생긴 대로 아이를 키우기 때문에 아이를 잘 키우고 싶으면 자신이 변해야 한다. 변할 수 없다면 죄책감에 끌려다니지 말고 자신도 아이도 가장 편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게 내가 얻은 개똥 같은 육아철학이다.

남은주 <한겨레>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

아빠는 괴물이고, 공룡이고, 사냥꾼이라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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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가 넘었음에도 네가 “10분만 더 놀자”고 외칠 때, 육아의 8할이 체력이라지만 끝내 나머지 2할은 인내력이란 말을 나는 깊이 삼킨다. 그래 무얼 더 할 것이냐, 우리에게 남아 있는 놀이란 이제 무엇인가, 종종 아득하지만 그럼에도 끝내 네가 바로 직전에 한 그 놀이만은 다시 외치지 않기를 바란다.

신명 나게 ‘공룡 놀이’를 끝내고 맥진한 기운을 헛기합으로 추슬러 ‘괴물 놀이’를 했건만 다시 또 ‘공룡 놀이’로 회귀하잔 네 제안은 사실 너무 가혹한 것이다. 하지만 그 가혹함을 너에게 설명할 방법이 애당초 내게 없다는 사실에 나는 그저 나의 짧은 인내심을 탓할 뿐이다. 그래, 다시 하자.

나는 시방 울부짖는 한 마리의 티라노사우루스다. 나는 비열한 사냥꾼 애꾸눈이고, 너는 늘 정의로운 가족의 파수꾼 점박이 타르보사우루스다. 굴러다니는 너를 위해 붙여놓은 우리의 침대가 바로 우리의 한반도다. 펄럭이고 휘감기는 이불이 우리에게 닥친 자연의 대재앙이고, ‘먼지 난다’는 엄마의 외침이야말로 호시탐탐 우리의 낙원을 방해하는 벨로키랍토르의 위협이다.

아빠는 괜찮다. 시계가 이제 밤 10시30분을 넘어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방송도 닫혀갈 시간을 향해가도 태워줘야 할 비행기는 이륙해야 하고, 끝내지 못한 칼싸움의 일합을 오늘 겨뤄내야 함을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렇게 최후의 한 땀까지 짜내 놀아줬건만,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목욕은 엄마랑 할래”라고 외쳐도 더는 서운해하지 않는다. 엄마 곁에, 엄마 곁에 네가 있는 것이 바로 효도다.

아들 둘을 키우려면 엄마는 성대결절이 오고 아빠는 디스크가 온다지만, ‘아들만 둘이에요’ 하면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안타까움을 내비치는 사람들이 야속하지만 그래도 아빠는 괜찮다. 정말 괜찮다. 엄마는 B형 남자 셋과 우글우글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기꺼이 긍정했다. 아빠는 이렇게 보태고 싶다. 우리는 늘 로도스다, 언제나 로도스처럼 뛰자. 종종 아빠가 영혼 없이 뛰는 척만 하는 이유는 너랑 해야 하는 괴물 놀이, 공룡 놀이, 야구 흉내, 정의의 용사 놀이 등등이 피곤해서가 아니라 산다는 게 늘 너처럼 활력적일 순 없기 때문이다. 그 얘기는 한참 뒤 나중에 다시 해주마.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아빠를‘아빠’라 부르지 말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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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딸들 사이에 오가는 언어가 범상치 않음을 알아챈 건 3년 전 이맘때였다. 소설 쓰는 손아람, 둘쨋딸 신소2(신비의 소녀2)와 셋이서 당일치기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손아람이 말했다. “형네는 참 특이해요.” 식구끼리는 좀체 쓰지 않는 “고마워”와 “미안해”를 일삼아 쓰더라는 거였다. 우리가 그랬던가.

그렇다고 나와 두 딸이 유별나게 내외하는 처지는 아니다. ‘불가근 불가원’이라면 모를까. 신소1(큰딸), 신소2는 나와 합의를 거쳐 얼마 전부터 나를 이름으로 부른다. “아빠! 아차, 영춘!” 아직은 서툴지만, 곧 입에 붙으리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 이 의지적인 행동의 뿌리는 다름 아닌 식구끼리도 서로 민감하게 배려하는 몸에 밴 감수성일 테니까. 그녀들이 “영춘, 미안!” “영춘, 고마워!”를 일삼을 날도 머잖았다. ‘곁’이란 ‘거리 없는 위아래’가 아니라 ‘거리를 확보한 나란히’라고 나는 믿는다.

개인의 언어 특성은 타고나는 부분도 크지 싶다. 신소2는 말이 무척 느린데, 가만 보면 하나하나 뜻을 짚어 입 밖으로 내느라 그러는 것 같다. 그녀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다. 1학년 때와 달리 그림일기를 쓰지 않기에 이유를 물었다. 진양조장단으로 답이 왔다. “요즘 참 좋은 일이 없어서.” 검사받기 위한 글은 쓰기 싫다는 뜻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한 셈인데, 그렇게 하라고 달리 가르친 적은 없다. 같은 환경에서 말을 배웠지만 신소1의 말이 훨씬 빠른 것을 봐도 언어는 분명 선천적인 데가 있다.

신소2의 경로화되지 않은 언어는 언뜻 엉뚱해 보이는 조합을 낳기도 한다. 달포 전쯤이다. 샤워를 하고 나오다가 개수대에서 발을 씻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도 식기들한테 피해가 가지 않게 씻고 있어.” 내가 그 말에서 사물에 대한 놀라운 감수성을 읽어낸 것이 핏줄의 이끌림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그녀의 고유한 언어 조합이 늘 문어체라고 타박을 받는 내 말투와 발가락만큼 닮은 것 같아 핏줄이 팽팽하게 당기는 느낌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내가 말을 받았다. “식기도 그렇게 생각할까?”

신소1은 어느덧 성인이 되어 제 밥벌이를 하지만, 고등학생인 신소2에게는 용돈을 준다. 필요할 때 쓰라고 신용카드도 맡겨뒀다. 신소2는 카드 쓸 일이 생기면 내게 전화를 걸어 용처를 밝힌다. “화장품 사러 왔는데, 색조 화장품은 내 용돈으로 사겠지만 기초 화장품은 영춘 카드로 살게. 기초 화장품은 양육비에 포함시키는 게 맞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 색조 화장품도 카드로 사라고 했다. “색조 화장품 값은 ‘효행 부금’이야. 잊지 마. 영춘 팔다리에 힘 빠지면 신소들한테 껌딱지처럼 딱 붙어서 살 테니까.”

우리 식구의 이런 대화에서 교육적 효과를 묻는 이들이 더러 있다. 교육 강박증이다. 중·고교 시절 신소1은 학교 가기 싫은 날이면 “선생님께 나 아프다고 전화 좀 해줘”라며 내게 거짓말을 시키곤 했다. 1학기 중간고사 시작 첫날, 신소2는 아침 8시가 다 돼 잠에서 깨어 천연스럽게 말했다. “잠을 충분히 잤더니 뿌듯하다.” 그래도 스스로 세상과 밀고 당길 줄 아는 그녀들이 믿음직한 건 사실이다. 손아람! 약속대로 우리 식구 이야기로 소설 써주는 거지?

안영춘 <한겨레> 여론미디어팀장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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