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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대한민국 길을 묻다] 종일 폐지 주워도 2000원… 빈곤 내몰린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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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노년 ‘살길 막막’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이모(76)씨는 매일 손수레를 끌고 동네를 돌며 폐지를 줍는다. 봉사단체의 도움으로 작은 단칸방에 월세로 사는 이씨가 하루종일 모은 폐지를 고물상에 팔면 고작 2000원 남짓 손에 쥔다. 그나마 폐지라도 주울 수 있는 날은 다행이다. 관절염과 당뇨병을 앓고 있는 그는 몸이 말을 안 들으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 식사는 봉사단체에서 주는 무료 급식으로 해결한다. 자식과의 교류도 끊긴 지 오래다. 이씨는 그래도 과거 취사 공간도 없이 공동화장실이 있는 쪽방에 살았던 때보다는 낫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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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노후가 이런 모습일지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이씨였다. 동네에서 철물점을 운영했던 이씨네 가족은 넉넉하진 않았지만 먹고살만 했다. 그러다 경기 불황과 소비 침체가 길어지면서 가게 문을 닫게 됐고, 아내의 병원비 부담까지 겹쳐 자연스럽게 빈곤층으로 밀려났다. 이씨를 돌봐주는 봉사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씨가 ‘게으르게 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사는 게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전했다.

이씨의 사례는 드물지 않다. 노인 인구 증가로 우리나라가 고령 사회로 변화하면서 생계에 허덕이는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노년’이란 단어에 ‘빈곤’ 딱지가 붙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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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노년

한국 사회 노년층의 빈곤은 심각한 수준이다.

29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 빈곤통계연보’에 따르면, 2014년 노인의 가처분 소득 기준 상대적 빈곤율은 47.2%로, 전체 연령대(13.3%)의 3배가 넘었다. 상대적 빈곤율은 소득이 중위소득(모든 가구를 소득 순서대로 줄 세웠을 때 중간에 있는 가구의 소득)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의 비중을 말한다. 노인 2명 중 1명은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도 최하위 수준이다. OECD에 따르면 2012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 빈곤율은 49.6%로 OECD 가입국 중 1위를 차지했다. OECD 평균(12.6%)의 4배에 육박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후파산’이란 말까지 생겼다.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올해 1∼2월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 1727명 중 60대 이상의 비율은 24.8%에 달했다. 2006년 노인 파산자 비율이 11.5%였던 것에 비춰 10년 만에 파산자 비율이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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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준비는 개인 노력만으로 안 돼

이처럼 노인 빈곤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노후준비가 미흡한 탓이다. 노후준비는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노년층은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다가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청년세대부터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워진 것도 노인 빈곤을 부채질하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책임지는 기간이 늘어난 반면 정작 자녀는 노부모를 부양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지 못해 노인들이 빈곤의 덫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연금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것도 문제다. 1988년 출범한 국민연금은 전 국민으로 대상이 확대된 지 2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아직 제도의 역사가 짧아 전 국민의 노후보장 수단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61세 이상 노인 893만명 중 노령연금 등의 연금을 탄 수급자는 38.3%인 342만명에 불과했다. 월 평균 수령액도 35만원 정도에 그쳤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의 60%에게 기초연금 매달 20만원씩 지급되긴 하지만 이 정도는 국내 근로자 평균 임금(330만원)의 6%에 불과하다. OECD 평균(20%)보다 한참 뒤진 수치다. 국민연금에 기초연금을 더해도 역부족인 현실이다.

이 때문에 노인들은 첫번째 은퇴 후에도 계속해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형편이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거주 노인 124만명 중 38%(46만명)가 일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하는 이유는 ‘생계비 마련’(62.2%)이 가장 많았다. 그러나 노인들의 일자리는 열악한 환경의 저임금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임금 근로자는 하루 평균 12.9시간을 일해 월 122만8000원을 벌었고, 직업별로는 경비원·미화원·택배원·가사도우미 등 단순 노무 종사자가 85.4%로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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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노인 빈곤율을 낮추기 위해 연금 정책을 보강하는 동시에 노인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초연금 지급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일할 수 있는 건강상태의 노인들에게는 국가가 나서서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산층 노인들이 빈곤계층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주택연금 등 자산을 활용한 연금 이용률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생애 주기별 소득·재산의 통합 분석 및 함의’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연령대의 순재산 평균을 100이라고 했을 때 노인부부의 순재산은 129.7이었지만 전체 연령대 가처분소득의 평균을 100이라고 했을 때 노인부부의 가처분소득은 51.0으로 뚝 떨어졌다. 노인들이 땅이나 집 등의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매달 들어오는 수입은 적다는 의미다. 주택연금을 활용하면 주택을 맡기고 매달 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려는 이유 등으로 주택 연금 가입 비중은 낮은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노년 일자리다. 사회가 공공 영역 등의 일자리를 많이 제공하면 노인 생계에도 도움이 되고 사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근로가 어려운 노인들에게는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연금 제도를 보강하고, 주택연금 등의 가입률을 높여 자산을 소득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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