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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공무원 신분 벗어나 표현의 자유 얻어 홀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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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은 답장 한번 안해, 박원순은 꼬박꼬박’ 페북에 글 올렸다가 파면된 김민호씨

“대법, 원세훈 전 국정원장 11만건보다 2건을 더 중대 범죄로 봐”

2015년의 마지막 날, 서울시 7급 공무원 김민호씨(50·사진)에게 대법원의 판결문 한 부가 송달됐다. 자신의 공무원직을 박탈하는 내용이었다.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게 벌금 250만원을 확정했다. 김씨는 공직선거법 266조에 의해 공무원직에서 물러났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한달이 지난 2014년 5월11일, 김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비교하는 글을 올렸다. “편지를 써도 오세훈은 한번도 답장 안하는데 박원순은 꼬박꼬박 한다”고 적었다. 얼마 뒤에는 당시 서울시장 새누리당 후보였던 정몽준 전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시 모습을 비판한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한 보수언론이 ‘막가는 서울시 공무원’이라며 김씨의 글을 기사화했고,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은 김씨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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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오세훈, 정몽준 전 의원에 대해 김씨가 글을 올린 행위가 “공직선거법상의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박 대통령을 비판한 것도 “대통령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판결문이 송달된 날 서울시청 공무원노조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만난 김씨는 “이제 공무원이라 제한됐던 여러가지 표현의 자유를 얻었다”며 오히려 홀가분해했다.

김씨는 “힘 있는 사람이 여당을 옹호한 것은 봐주고, 하위직 공무원이 SNS에 쓴 글에 엄격한 게 대법원이 말하는 평등이고 정의냐”고 했다. 국가정보원 직원들을 대선에 개입시킨 원세훈 전 국정원장, 선거 주무장관으로 있을 때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총선필승”을 외친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김씨는 “대법원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인정한 내 글은 딱 2개인 반면 원 전 원장은 11만건이다. 대법원은 11만건보다 2건을 더 중대한 범죄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정 전 장관을 무혐의 처분한 검찰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관이 여당 공식행사에서 능동적으로 ‘총선필승’을 외친 것은 선거운동이 아니고, 내가 일과시간 이후에 개인 공간에 글을 쓴 것은 선거개입이라는 검찰의 판단이 과연 ‘영혼이 있는’ 판단이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고등학교 1학년생이던 둘째아들 또래 학생들이 돌아오지 못한 것에 분노했다. 그는 “내 아들만 한 아이들이 많이 희생된 것에 감정이 복받쳐 박 대통령에 대해 조금 거친 표현을 쓴 건 사실이지만 대통령을 비판했던 수많은 목소리와 같은 뜻이었다”며 “박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재판받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상황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 ‘굴욕협상 원천무효’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지키기에 나서겠다고 했다.

<글·사진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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