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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유죄 부분까지 재심리...종잡을 수 없게 흘러가는 원세훈 파기환송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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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종북 개념 설전, 수사팀 "무죄 예단"우려 확산

“국가정보원이 종북 세력에 대응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종북으로 보고 대응했다가 나중에 아닌 걸로 밝혀지면, 이는 적법여부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재판장)

“대응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걸 수집해 수사파트에 넘겼으면 적법하다. 하지만 (종북 대응한다며) 하면 안 되는 (정치 편향의) 댓글을 달았다면 그 자체로 불법이다.”(검사)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파기환송심에서 종잡을 수 없는 형태로 흘러가고 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원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은 부분까지 포함, 모든 쟁점을 다시 심리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수사팀은 “재판부가 무죄를 예단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13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64) 전 국정원장의 파기환송심 5차 공판준비기일. 이날도 재판부와 검찰의 설전은 이어졌다. 벌써 다섯 번째 계속되는 것이다. 4차 기일에선 검사가 재판 중 법정에서 퇴장하기까지 했다. 이날 논란은 ‘종북세력’의 기준과, 댓글 작업이 국정원법상 직무로 규정된 ‘대공 관련 보안정보의 배포’로 볼 여지는 없느냐에 모아졌다.

먼저 재판장인 서울고법 형사7부 김시철 부장판사가 종북세력의 기준과 개념에 대해 물었다. 앞서 검찰은 국정원의 대북 심리전단 직원들이 종북세력에 대응한다면서 정치적 댓글과 트위터 활동을 벌였다며 기소했다. 하지만 재판장은 이들의 활동에 적법한 것도 있을 수 있는 만큼, 불법과 적법의 기준이 될 종북세력의 개념이 제시돼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나아가 재판부가 ‘종북세력’ 표현의 명예훼손에 관한 판례까지 언급하자 검찰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복현 검사는 “(원 전 원장 지시에 의한 심리전단 활동이) 선거와 정치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기소한 것인데, 왜 명예훼손 문제가 쟁점이 되는지 궁금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재판장은 “1ㆍ2심 판결을 유지할지, 수정할지를 하나하나 검토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종북세력에 대응하는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어 그 적법성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되받았다.

재판부는 이어 심리전단 직원들의 댓글 트위터 활동이 종북세력 대응을 위해 적법하게 ‘배포’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도 따졌다. 국정원법 3조에서 국정원 업무로 규정한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ㆍ작성 및 배포’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에 검찰은 “(원 전 원장이) ‘다음 정권에 야당이 집권하면 국장 이상이 자리를 보전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 등 선거 공정성을 침해한다고 볼 의심스러운 발언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종북세력이 아닌데도 종북세력으로 대응했다는 것이 주된 공소사실 중 하나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지난 7월 국정원 직원의 이메일에서 나온 트위터 계정목록을 증거에서 배제하도록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때문에 불법 트윗 규모가 줄어든 것이 파기 환송심 재판의 쟁점으로 예상됐다. 보통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이 파기한 부분만을 심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이와 달리 이번에는 재판부가 쟁점을 확대하면서 결과 예측이 더욱 어려워진 양상이다.

재판부는 앞선 준비기일에서 원 전 원장 혐의에 대한 ‘가정법’ 질문을 쏟아내 검찰과 극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국정원의 대북 사이버 심리전 전담팀이 2005년 3월 설치됐다면서, 참여정부 시절부터 국정원의 모든 사이버 활동을 전반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취지의 질문도 했다. 검찰은 “역대 국정원장들을 다 불러 심리하고, 나머지 모든 업무도 심리하자는 것이냐. 기왕 이렇게 된 것 다 불러서 심리하자는 것에 동의한다”고 맞받았다. 그러나 재판장이 쉴틈 없이 검사의 답변에 질문 공세를 퍼붓자 이복현 검사는 “서로 예의라는 것이 있다”며 강한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재판장이 또 ‘손자병법’을 인용해 국정원의 조직적 댓글달기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탄력적인 용병술’에 빗대자, 박형철 부장검사는 자리를 박차고 법정을 나가버리는 사태까지 전개됐다.

이날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 7명에 대한 검찰의 증인 신청을 모두 받아들였다. 증인 신문이 마무리되는 내달 18일 결심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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