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의료쇼핑은 과잉 진단·과잉 치료 논란을 낳고 있다. 사진은 한 대형병원 대기실 모습. [이충우 기자] |
충주시는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급격한 확산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됐던 '닥터쇼핑'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의료급여 과다 이용자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A씨(33)는 평소 정신과 치료를 받아오던 중 80군데 병원에서 같은 약을 처방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 B씨(60·여)는 20곳이 넘는 의원과 한의원을 전전하면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지며 집중관리 대상 600명에 포함됐다. 단속을 맡은 충주시 관계자는 "마치 출근하듯 병원을 방문하거나 별 이유 없이 병원을 옮겨 물리치료를 받고 상담을 받는 등의 사례가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국내 메르스 원인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닥터쇼핑'을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발행한 '헬스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은 34개 회원국 중 외래진료 횟수와 평균 입원일수가 회원국 평균의 2배나 된다.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진료를 받은 횟수는 연간 14.3회로 OECD 평균(6.9회)보다 2.1배 많다. 증가세도 가파르다. 2008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진료를 받은 횟수는 12.9회로 4년간 1.4회 늘어났는데, OECD 평균은 2007년과 2012년 사이 0.2회 증가에 그쳤다. 다른 나라보다 빠른 고령화를 감안해도 병원 방문 횟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닥터쇼핑은 지나친 건강 염려와 일부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발생하고 있다. 병·의원들도 환자들 방문 횟수를 늘리거나 물리치료 등을 권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연간 2조~3조원의 비용이 낭비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병원에 자주 가는 환자들의 38%는 관절염 등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었다. 대부분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하루에 한 번은 꼭 방문하는 필수 코스처럼 돼버렸다는 지적이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치료가 아니라 일상생활이 된 셈"이라며 "국민건강보험으로 본인부담금이 낮다는 게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각종 보험 가입이 늘면서 환자들과 병원들이 필요 이상의 진료를 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이 같은 습관적 병·의원 방문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데 있다. 정부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의료급여 대상자)의 '의료쇼핑'이 문제가 되자 2006년 본인부담금 없는 선택병원제 등과 같은 제한 장치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1인당 외래진료 지출을 5%가량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충주시 실태조사에서 보듯이 종합병원 진료비 부담이 3000원 정도에 불과해 이 같은 선택병원제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처럼 병원을 여러 군데 옮겨다니는 것이 환자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의 조비룡, 신동욱 교수팀이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이용해 2003~2004년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심혈관계 위험 질환으로 진단받은 4만7433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러 의료기관을 옮겨다닌 환자가 그러지 않은 환자에 비해 심근경색 발생률은 1.57배, 뇌경색 발생률은 1.44배, 심혈관질환 사망률은 1.3배, 전체 사망률은 1.12배 높게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에 쓴 해당 질환 진료비 차이도 컸다. 여러 의료기관을 다닌 환자들은 약 205만원을 쓴 반면, 한 의료기관을 다닌 환자들은 약 145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분석됐다.
■ <용어 설명>
▷ 닥터쇼핑 : 환자가 치유에 대한 확신이 없어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과잉 진료를 받는 현상을 말한다.
[이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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