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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아시아블로그]불신의 덫에 걸린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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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국회 정보위원회와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27일 전체회의를 열고 국가정보원의 내국인 대상 해킹 의혹과 관련, 관련 기관들로부터 현안보고를 받는다. 이날 오후 비공개로 열리는 정보위 전체회의에서는 이병호 국정원장과 1ㆍ2ㆍ3차장 등 국정원 고위 간부가 출석한 가운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임씨(45)가 생전에 삭제한 파일의 복구ㆍ분석 결과에 대한 보고가 이뤄질 예정이다.

하지만 국정원은 이 파일을 복구ㆍ분석한 결과 내국인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판단하고 정보위에 이 같이 보고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져 야당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국정원이 이탈리아 보안업체 '해킹팀'으로부터 구입한 해킹 프로그램으로 내국인 사찰을 했다는 의혹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물론, 국정원이 오늘을 시점으로 해킹 의혹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신뢰도는 다시 회복하기 쉽지 않아보인다. 이번 해킹논란에서 국가정보기관인 국정원인 단체행동을 했다는 비난은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국정원은 지난 17일 항변성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19일에는 전체 직원 명의로 성명성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댓글 사건 이후 더 이상의 이미지 실추를 막고 국가 정보기관으로서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전면 대응으로 해석된다.

국정원은 17일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국정원을 근거 없는 의혹으로 매도하는 무책임한 논란은 우리 안보를 약화시키는 자해행위"라며 정치권을 겨냥해 비난했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들의 이 같은 행동은 '국정원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국정원법 9조 2항을 어긴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국정원은 이날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프로그램 사용 기록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발표도 좀 더 신중해야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정원이 의혹 해소를 위해 '삭제 자료 공개' 카드를 선제적으로 내밀었지만 성급히 공론의 장에 국가기밀을 올렸다는 지적때문이다.

여기에 국정원은 발표 이후 해킹 프로그램만큼을 더욱 철저하게 관리됐어야 했다. 하지만 의혹의 핵심인 직원 임모씨는 해킹자료를 삭제해 버렸다. 임 씨가 해킹자료를 삭제하는 것을 사실상 국정원이 방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정원은 임씨가 자살하자 지난 19일 '동료 직원을 보내며'라는 성명서를 통해 "그는 2012년도 문제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을 실무판단하고 주도한 사이버 전문 기술직원"이라며 "그의 죽음을 정치적 공세를 이어가는 소재로 삼는 개탄스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단체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국정원 요원을 잃는 것은 국정원 차원을 떠나 국가적으로도 크나 큰 손실이다. 하지만 정보기관이 스스로 나설 일은 아니다.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나서지만 불명예스러운 일만 겪을까 우려스럽다.

국정원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홍보하기 위해 국정원내부에 안보전시관을 운영중이다. 이 전시관에 가면 임무를 수행하다 세상을 떠난 국정원 요원들을 기리는 별 표식 있다. 별은 48개다. 이 별에는 이름도, 사망연도도 없다. 오로지 별 하나로만 표식을 해 충직함을 나타낸다. '무명(無名)의 헌신으로 대한민국을 지킵니다.' 라는 국정원의 표어와 비슷하다. 국정원은 억울함도 이해는 하지만 여론에 휘말리지 않는 충직함을 다시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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