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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앵커브리핑] '돌에 새긴 다짐'…무명의 헌신이 헛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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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2부의 문을 엽니다.

2013년작 영화 <베를린>에는 국정원 요원이 등장합니다. 베를린 주재 첩보원 정진수. 완벽하게 정의롭지는 않지만 거친 현장의 밑바닥을 치열하게 지켜내는 모습에 많은 관객들이 몰입했었습니다.

비록 영화 속 장면이지만 이름 없이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 짐작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그러한 무명의 헌신들이 모여 지금 우리사회의 한 축을 이룩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지난 주말 한 국정원 직원의 죽음이 전해졌습니다.

"업무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하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께 죄송할 따름이다."

국가정보기관 직원의 죽음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선택했던 극단적 방법이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의 명의로 된 입장이 나왔습니다.

"그의 죽음을 정치적 공세로 이어가는 개탄스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죽음으로 증언한 유서 내용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의 주장처럼 절대다수의 국정원 직원들이 음지에서 무명으로 헌신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현실도 있습니다. 굳이 군사정권 시절, 남산 대공분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반복되어온 도청 사건과 댓글 사건으로 신뢰를 잃어온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불신' 말입니다.

어떻게든 켜켜이 쌓여온 그 불신을 '믿음'으로 전환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국정원 직원들이 개탄스러워할 일은 지금의 도청 논란이 아니라 무명의 헌신이 폄훼당하는 불신의 역사가 반복되는 현상이 아닐지요.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

국정원이 건물 정면 묵직한 원훈석에 새겨놓은 다짐입니다.

짧은 문장 속에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단어가 없습니다. 자유, 진리, 무명, 헌신. 아마도 국정원 직원 모두의, 아니 우리 모두의 가슴을 뛰게 하는 강렬한 문장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신뢰받는 정보기관에 대한 믿음과 시민들의 지지를 위해서라도 그의 죽음을 단지 한 명 정보요원의 비극으로 마무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내국인 감청이 사실이든 아니든 진실은 밝혀내야 하겠지요. 수많은 무명의 헌신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오늘(20일)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손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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