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7 (월)

'충성과 명예' 먹고사는 그들, 왜 극단적 선택했나?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사찰 논란'에 숨진 국정원 직원·중국서 숨진 최두영 원장 등

전문가들 "스스로에게 책임감 과하게 부여…투명하지못한 정부 대응도 한 원인"

뉴스1

19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동부경찰서에서 국가정보원 직원 임(45)씨가 작성한 유서를 공개하고 있다. 2015.7.19/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이후민 기자,박현우 기자 = 국가 공무원들이 자신이 속한 조직에 관한 의혹에 휘말리거나 조직의 사건사고와 관련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은 이번 국가정보원 임모(45) 과장이 처음이 아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무원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스스로의 명예 등을 이유로 최후의 수단으로 이같은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8일 국정원 임 과장이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한 야산에서 차량 안에 번개탄을 피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임 과장은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팀사로부터 구입한 PC와 스마트폰 해킹프로그램(RCS) 관련 업무를 담당하다 최근 사찰 논란 등이 불거지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임 과장은 국정원이 이탈리아 국정원 입사 후 20년간 사이버 안보분야에서만 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된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당사자로, 대테러 부서로부터 해킹 요청을 받으면 담당자에게 이관하는 업무를 맡았다.

임 과장은 19일 공개된 유서에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초래한 것 같다"며 "내국민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적었다.

이어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혹시나 대테러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다"고 남긴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3월22일에는 경기도 하남시 신장동 모 중학교 근처에 주차된 승용차에서 국정원 대공수사국 소속 권모(51·4급) 과장이 자살을 기도한 일도 있었다.

권 과장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관련해 유우성(35)씨의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검찰 측 핵심 증거를 조작한 혐의로 수사를 받다 자살을 시도했다.

권 과장은 당시 유서에서 "검찰이 한쪽으로 방향을 잡고 수사를 하면서 목숨 걸고 일하는 국정원 요원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국익을 위해 중국에서 사형을 당할지언정 국내에서 죄인처럼 살 수는 없다"고 적었다.

뉴스1

19일 국가정보원 전경. 2015.7.19/ 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정원 직원 외에도 국가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최근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지난 5일 숨진 최두영 지방행정연수원장은 중국 현지에서 발생한 연수생 버스 추락사고 사고수습팀을 이끌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원장은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홍콩시티호텔에서 뛰어내려 쓰러진 채 발견됐다.

최 원장은 지방행정연수원 개원 50주년을 맞는 올해 1월 지방행정연수원장에 취임해 주변의 기대와 높은 의욕 속에 업무를 수행해 오던 차였다. 또 연수생 버스 추락사고 수습 업무 과정에서 중국 당국이나 유가족과의 마찰이 없었기에 최 원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13일에는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 최모(45)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경위는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 등이 담긴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다 숨졌으며, 경찰은 최 경위의 사인을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밝혔다.

유족이 공개한 유서에서 최 경위는 "경찰 생활하며 16년 동안 월급만 받아 가정을 꾸미다보니 대출 끼고 현재 전세를 살고 있다"며 "경찰 생활을 하며 많은 경험을 했지만 이번처럼 힘없는 조직임을 통감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힘없는 조직의 일원으로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많은 회한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당당하게 공무원 생활을 했기에 지금도 행복하다"며 "이제라도 우리 회사의 명예를 지키고 싶어 이런 결정을 한다"는 글을 남겼다.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국가 공무원들의 자살 사고와 관련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공무원으로서 자신이 갖는 지위나 책임감을 스스로 과도하게 부여하는 경우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특히 공무원 사회일수록 무슨 일이 터지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조직 내 분위기가 있을 수 있다"며 "그런 심리적 압박이 있을 때 우울증이 있거나 급성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은 인지적 착오를 일으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충성과 명예를 지키고자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는데 본인의 지위와 직책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며 혼자서 책임을 지려고 할 필요가 없다"며 "책임감 때문에 목숨을 끊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고 오히려 가족에 대한 책임은 져버리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의 투명하지 않고 소극적인 정보 공개 방식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국민들은 스마트해지고, 질 좋은 정보를 더 빠르게 받아보길 갈구하는데 일이 터지면 정부 기관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정보를 숨긴다는 의혹을 국민들이 갖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원하는 정보가 제때 공개되면 정부기관이 조사하고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릴테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다 보니 정보를 요구하는 국민들과 '감추려는' 정부 사이에 낀 일선 공무원들이 받는 압박과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구 교수는 "정보의 투명성 확보가 핵심"이라며 "부패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투명성, 책임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런 일들이 더 일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hm3346@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