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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메르스 종식임박]복지부에 쥐어산 '질본'..메르스에 '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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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실장이 지휘, 비정규직 60%...10년 넘게 조직·위상 제자리, 우수인재 안모여

"처나 청 단위 조직으로 격상하고 예산과 인력 보강해야"

뉴스1

질병관리본부./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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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음상준 기자 = 메르스(MRE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지난 두 달 간 대한민국을 휩쓴 사이 대책본부장은 두차례 바뀌었다.

처음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이 맡다가 초동대응에 실패가 확인되고 사태가 커지자 장옥주 보건복지부 차관, 문형표 장관으로 대책본부장이 격상됐다. 그런데 양 본부장은 의사출신이고 장·차관은 연금 전문가다. 전문성으로 보면 거꾸로 가는 구조가 된 것이다.

여기에는 본부장 보다는 차관, 차관보다 장관, 장관보다 총리·대통령 식으로 가급적 직급이 높은 사람이 대책본부장으로 나서야 책임을 지는 것 같은 뿌리깊은 한국적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더 조직의 위상과 전문성을 떨어뜨려 질병에 대한 대응력을 갖추지 못하게 하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의 독립문제는 정부내에서 논의거리 조차 되지 못했다.

복지부에 쥐어산 질본...메르스에 무기력

국내에 신종 감염병이 발생하면 전면에 나서야하는 정부기관은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이다. 질본은 석·박사 출신 연구원들이 대거 포진한 보건복지부 내 전문가 집단이다. 본부장도 복지부에서 의사 면허를 가진 국장급 인사가 승진해 맡는 것이 관례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질본은 중심에 서지 못 했다. 장·차관이 지휘하는 보건복지부 내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거수기 역할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감염병 사태에 한해서는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한과 예산을 가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센터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2003년 사스 사태를 겪은 정부의 반성이 질본 탄생으로 이어졌다.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때도 질본은 전면에서 상황을 통제했다.

그러나 기관이 설립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조직은 1급 실장이 지휘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신종 감염병은 군(軍)과 경찰, 지방자치단체 등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야 하는데 지금의 조직과 위상으로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보건당국의 전문성 부족을 지적하지만 의학계 내부에서는 권한이 없고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구조가 더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 질병관리본부장을 비롯해 주요 센터장 등이 모두 의사 출신이고, 복지부 관련 부서 국장급 인사도 의과대학을 나왔다.

보건당국은 세계보건기구(WHO) 가이드라인과 사우디의 메르스 유행 사례를 토대로 국내 메르스 상황을 분석하고 대처했다.

사우디나 우리나라 모두 메르스가 '병원 내 감염'에 집중된 것은 동일하지만, 국내 의료기관 병실이 5~6인실 중심이고, 환자들이 몰린 응급실에서 확산이 이뤄진 차이점을 간파하지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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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브리핑 중인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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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적 오판이 이뤄진 것은 초라한 질본의 위상과 인프라와도 무관하지 않다. 질본은 430여명의 인력 중 비정규직 비율이 60%에 이른다.

기관이 서울과 떨어진 충북 오송에 있어 유능한 인재를 구하기 어려운데다 신분마저 불안해 석·박사급 인재들이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전문성을 쌓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해외 파견도 스위스 제네바, 필리핀 마닐라 등에 그쳐 해외 유수한 기관과 교류가 부족하고, 질병 수사관으로 불리는 역학조사관 역시 34명에 불과했다.

역학조사관은 이번 메르스 사태 때 환자 감염경로를 추적하고 현장에서 판단을 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정부는 인력 부족으로 애를 먹었다.

메르스 유행 초기 평택성모병원에 인력이 대거 파견돼 삼성서울병원 등 다른 의료기관 상황을 통제하는데 애를 먹었다. 뒤늦게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와 공보의 출신 인력을 임시방편으로 위촉해 현장에 급파했지만 골든타임을 놓친 이후였다.

주목받는 미 CDC 모델…권한·조직 강화해야

메르스가 대규모 유행한 것은 정부 오판 외에도 국내 특유의 병원 문화가 주요 원인으로 제시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제2의 메르스 사태를 막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서아프리카 지역 에볼라 사태처럼 전 세계는 신종 감염병과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국내 기후도 점차 아열대 기후로 변화하는 실정이다.

아열대 모기가 매개체인 뎅기열 등이 국내에 유입돼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해외 교류가 늘면서 감염병 위험은 더 커졌다.

신종 감염병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면 국제적 위상을 갖춘 전문기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질본을 최소한 처·청 단위 조직으로 격상시키고 예산과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역학조사관을 복지부에 30명 이상, 17개 시·도에 각 2명 이상씩 최소 64명을 두도록 하고 행정 권한을 강화했지만 미봉책에 그친다는 평가다.

일본은 지난 2000년 신감염병예방법을 만들면서 에볼라를 대응 수위가 높은 1군으로 지정했다. 감염병의 해외 유행을 조사하는 국제역학조사관도 신설했다. 2003년 사스 대유행이 발생한 중국은 위기대응 특별법체계를 구축하고, 홍콩은 음압시설을 갖춘 4000병상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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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 대책회의를 열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과 토머스 프리든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센터장./©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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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력한 대안은 미국 CDC 모델이 꼽힌다. CDC는 1만5000여명의 인력과 12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사용한다. 해외 50여개국에 인력을 파견하고 역학조사관도 300여명을 확보해 WHO를 견제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국내 실정을 고려해 이 같은 조직을 꾸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획기적인 인프라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질본 내 위기대응센터를 신설하고 역학조사관을 충원하는 선에서 후속 조치가 마무리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실정이다.

지난 1일 의과학 석학들 모임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개최한 메르스 원탁토론회에서는 감염병 대책이 '전쟁을 준비하는 수준'으로 격상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역임한 이종구 서울의대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센터장은 "메르스 사태로 우리나라의 취약한 문제가 드러났고 보건 안전망에 구멍이 생겼다"며 "신종 감염병이 국가적 보건안보로 떠오른 만큼 예방에서부터 대응, 사회 회복에 이르는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임 본부장인 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이번 메르스 사태 때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전문가인 역학조사관을 어떻게 양성할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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