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5 (수)

[메르스 종식임박]환자 절반.. 삼성서울병원 52일의 불명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체 감염자 절반가량 원내에서 발생…14번 환자 놓친 것이 결정적

사상 초유 '부분 폐쇄' 조치에 계속된 의료진 감염…두 차례 기자회견

일류병원 이미지·환자 신뢰 회복 숙제…삼성그룹, 대대적 개편 예고

뉴스1

삼성서울병원./뉴스1 © News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음상준 기자 = 10년 같은 52일을 보낸 삼성서울병원이 하루 뒤인 20일 0시를 기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집중관리병원에서 해제된다.

52일은 지난 5월 27일 슈퍼전파자(Super-Spreader)인 14번 환자(남·35·퇴원)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방문한 시점부터 집중관리병원 해제를 목전에 둔 19일까지를 합한 기간이다.

두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삼성서울병원은 부분 폐쇄 조치에 이어 환자 치료를 다른 의료기관에 맡겨야 하는 아픔을 맛봤다.

지난 1994년 11월 개원 이후 20년 넘게 고속 성장을 기록하며 쌓아온 명성이 한순간에 흔들렸고 메르스 확산 책임론에 시달렸다.

국민들의 질타가 쏟아지자 경영진은 수차례 고개를 숙였다. '삼성이 뚫린 것이 아니다'는 국회 발언, 박원순 서울시장의 야밤 기자회견과 계속된 의료진 감염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전체 감염자의 절반 수준인 91명의 확진 환자가 발생한 삼성서울병원은 52일의 교훈을 디딤돌 삼아 과거의 명성을 되찾아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1번 환자 찾아내고도 14번 환자 놓쳐 큰 대가 치러

삼성서울병원의 초기 메르스 대응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5월 18일 입원한 첫 번째(남·68) 환자가 의심 증상을 보이자 이튿날 국립보건연구원에 검체를 보내 20일 확진 판정을 받도록 조치했다.

메르스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인데도 병원 자체적으로 환자를 찾아내 추가 감염을 막았다. 그런데 같은 달 27일 14번 환자가 응급실을 방문하면서 메르스 악몽이 시작됐다.

14번 환자는 응급실 방문 당시 중증 폐렴 증세를 보였다. 메르스 1차 유행지인 평택성모병원에서 첫 번째 환자로부터 감염된 상태였지만 의료진은 해당 사실을 알지 못 했다. 그저 증상이 심한 폐렴 환자로만 알았다.

이 환자는 입원 첫 날인 27일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병원 여러 곳을 오갔다. 28일부터는 증상이 심해져 응급실에 머물렀지만 이미 응급실 내 환자, 보호자, 의료진에게 메르스 바이러스가 전파된 이후였다.

삼성 의료진이 14번 환자를 수상히 여긴 것은 29일 오후쯤이다. 환자 행적을 추적하면서 메르스 감염이 의심된다는 판단이 섰다.

병원 측은 부랴부랴 응급실과 병원 주요 시설을 소독하고 보건당국에 해당 사실을 신고했지만 뒤늦은 조치였다. 당시만 해도 의심 환자였고 혹여 확진 판정을 받는다고 해도 90명이 넘는 환자가 나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 했다.

첫 번째 환자를 잘 대처하고도 14번 환자를 놓치면서 메르스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이 전개됐다.

◇삼성 35번 의사와 박원순 시장의 야밤 기자회견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로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지난달 4일 밤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긴급기자회견 이후부터다.

뉴스1

지난 4일 밤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메르스 확산 방지에 대해 브리핑 중인 박원순 서울시장./© News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이 기자회견에서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남·38) 환자를 언급하면서 1565명이 메르스에 노출돼 격리 조치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늦은 밤에 열린 기자회견인데다 1600명에 육박하는 격리자가 발생했다는 서울시 발표는 충격이었다.

당시만 해도 삼성서울병원은 보건복지부의 비공개 방역 방침에 따라 D병원으로 불렸다. 그래도 기자회견 여파는 컸다. 35번 환자가 박원순 시장의 기자회견 내용을 반박하고, 복지부의 유감 표명 등이 이어지면서 감염병 문제가 정치 이슈로 번졌다.

정부의 비공개 원칙에도 D병원이 삼성서울병원이라는 정보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급기야 삼성서울병원 송재훈 원장은 지난달 7일 첫 번째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은 이날 오전 열린 긴급기자회견에서 "CCTV(폐쇄회로 텔레비전) 분석 결과, 5월 27일 내원한 14번 환자에게 노출된 응급실 환자 675명, 의료진 등 직원이 218명"이라고 밝혔다.

이어 "최초 메르스 확진 이후로 질병관리본부 및 합동대책본부와 긴밀한 공조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병원장이 지휘하는 메르스 대책본부를 구성하고 노출자들을 자가 격리나 병실 입원 조치하고 잠복기 기간에 증상 여부를 살피고 있다"고 설명했다.

35번 환자에 대해서도 지난 5월 27일 14번 환자가 있었던 응급실 구역에서 다른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고 밀접 접촉에 해당하는 2미터 이내에 해당한다고 공개했다.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은 여러 차례 사과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메르스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국회서 "삼성이 뚫린 게 아니다"…13일 부분 폐쇄와 두 번째 기자회견

메르스 공포감이 점점 커져갔지만 삼성서울병원은 당시까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완벽히 인지하지 못 했다. 삼성서울병원이 코너에 몰린 것은 지난달 11일 국회 메르스 대책 특별위원회에서 나온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국회 특위에 참석한 정두련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과장은 "14번 환자는 중동에서 온 환자가 아니었고, 병원에 왔을 때는 다른 병원을 거쳐온 폐렴 환자에 불과했다"며 "정부로부터 메르스가 집단 발병하고 있다는 정보가 없으면 해당 환자를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불가항력으로 환자를 알기 어려웠다는 대답이 나오자 박혜자 새정치연합 의원은 "삼성병원이 뚫려 슈퍼전파자가 나오는 형국"이라며 "병원에서 애초에 (메르스를) 막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정 과장은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 의원이 "삼성병원이 뚫린 게 아니냐"고 묻자 정 과장은 "네"라고 답했다.

이 발언 이후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확신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황상 환자를 발견하기 어려웠다고 해도 국내 최고 의료기관 명성에 걸맞지 못하게 감염 관리가 허술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삼성서울병원은 코너에 몰렸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이송요원인 137번(남·55) 환자가 지난 12일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추가적인 대규모 노출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급기야 병원 측은 13일 밤 11시 11분께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신규 외래진료와 응급환자 진료를 일시 중단하는 '부분 폐쇄' 결정을 발표했다.

이튿날 오전 삼성서울병원은 두 번째 기자회견을 열었고 송재훈 원장은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첫 번째 기자회견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송 병원장은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확산 중심 병원이 되고 응급실 이송요원인 137번 환자에 대해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전적으로 병원 책임이고 불찰이며, 최종적으로 노출 규모가 파악되는 대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뉴스1

대규모 메르스 감염자 발생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한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어 "137번 환자로부터 생길 수 있는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보건당국과 지자체와 적극 협조하겠다"며 "병원에서 감염된 모든 메르스 환자의 진료를 끝까지 책임 지겠다"고 강조했다.

◇계속되는 의료진 감염…환자 치료 다른 병원에 맡겨

7월로 접어들면서 메르스가 소강국면에 진입하고 삼성서울병원도 한숨을 돌리는듯했으나 이번에는 의료진이 연속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감염 관리 체계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 병원 간호사인 183번 환자(여·24)와 동갑내기 간호사 184번 환자(여·24), 의사인 185번 환자(여·25)가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차례로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로 인해 메르스에 감염된 삼성서울병원 소속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등 의료진은 15명으로 늘었다. 여기에 이송요원과 보완요원을 포함하면 17명으로 증가한다.

의료진 대다수가 병원 '부분 폐쇄' 조치 이후 감염된 사례여서 논란이 컸다. 지난달 17일 이전까지 레벨D등급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방호복을 입고 벗는 과정에서 추가 감염이 일어난 것으로 정부 역학조사 결과 밝혀졌다.

연이은 의료진 감염에 삼성서울병원은 격리 입원 중인 확진 환자 15명을 국립중앙의료원과 보라매병원 등으로 분산 이송했다. 추가 감염을 막으려는 보건당국의 고육지책이었지만 삼성 입장에서는 환자 치료를 다른 의료기관에 맡기는 모양새가 됐다.

최신 의료장비를 갖춘 암병원을 포함해 1900여 개 병상을 확보한 초대형 병원이 병상수가 435개로 4분의 1 수준인 국립 의료기관에 환자 치료를 맡긴 셈이다.

◇10년 같은 52일…삼성서울병원 신뢰 회복이 관건

이변이 없는 한 삼성서울병원은 20일 0시를 기해 메르스 집중관리병원에서 해제된다. 14번 환자가 응급실을 방문한 지난 5월 27일 이후 꼬박 52일이 흘렀다.

이 기간에 삼성서울병원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을 겪고 많은 질타를 받았다. 무엇보다 최고 병원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게 됐다. 환자들로부터 절대적이었던 신뢰를 잃어버린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병원 내부에서도 시간이 흐르면 외래환자, 수술실적 등을 예전 수준으로 회복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와 브랜드 파워를 되찾는 것은 어려운 과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서울병원 한 관계자는 "주말에도 환자가 북적이던 병원이 고요한 것은 개원 이래 유례를 찾을 수 없다"며 "진료 기능이 서서히 회복하겠지만 병원에 대한 환자 신뢰를 되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숙제일 것 같다"고 말했다.

뉴스1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관련 사과문을 발표하며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뉴스1 © News1 정회성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메르스가 없지만 삼성서울병원은 당분간 뼈를 깎는 고행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뢰 회복을 위한 대책은 이미 그림이 그려졌다.

이재용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23일 오전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서울병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병원과 연구기관, 학계 등과 손잡고 감염 질환 예방과 백신 개발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병원을 대대적으로 혁신하겠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성서울병원을 바라보는 병원계의 전망은 밝지 만은 않다. 국내 주요 대형병원 한 관계자는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사태로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며 "예전 수준으로 병원이 운영되려면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고, 주요 의료기관들의 건전한 경쟁도 약해져 결과적으로 국내 의학계에도 손해가 됐다"고 평가했다.

sj@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