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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단독] 병원들, 메르스 위험에도 의료폐기물 수백톤 350㎞ 넘는 먼 거리에 버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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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국립대 병원인 서울대병원이 올해 6월까지 버린 의료폐기물은 모두 1208t(톤)이다. 그런데 이 폐기물들이 어디로 버려지고 있는지 알아봤더니 황당한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에 있는 서울대병원이지만 폐기물은 경북 경주까지 내려가서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두 장소 간 거리는 장장 350㎞나 된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한창일 때도 감염 우려가 큰 이 폐기물들을 실은 화물차는 유유히 경주로 달려가고 있었던 셈이다.

경향신문

지난 2일 오후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앞에서 의료진들이 방호복을 착용하고, 의료폐기물을 옮기고 있다./정지윤기자


■얼마나 멀리 가서 버릴까?

새정치민주연합 박주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 17일 분석한 자료를 보면 국립대병원 16곳 중 10곳(62.5%)의 의료폐기물 처리를 위한 이동거리가 100㎞가 넘었다.

거리별로 보면, 가장 불명예스러운 1위는 서울대병원이 꼽혔다. 서울대병원은 경북 경주의 ㄱ업체가 운영하는 폐기물처리장으로 올해에만 1208t을 버렸다. 2010년부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지난 5년간 1만4897t을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병원으로는 제주대병원(308㎞), 경상대병원(200㎞), 강릉원주대치과병원(171㎞), 강원대병원(145㎞) 등의 순으로 먼 거리로 폐기물을 버리고 있었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병원인 탓도 있겠지만 전북대병원의 경우 폐기물 처리장과의 거리가 단 3㎞에 불과했다. 서울대병원이 116배 멀리 버리고 있는 셈이다. 국립대 병원(분원 및 치과병원 포함) 16개의 의료폐기물 총 이동거리는 6480㎞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5년간 의료폐기물 처리 이동거리가 늘어난 곳은 분당서울대병원, 충북대병원, 충남대병원 3곳이었다. 분당서울대 병원은 35㎞(2010년)에서 320㎞(2011년)로, 충북대병원은 80㎞에서 235㎞로, 충남대병원은 111㎞(2014년)에서 144㎞(2015년)로 폐기물 이동거리를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도 분당서울대병원은 2013년에 폐기물 이동거리를 35㎞로 줄였으나, 2014년에 270㎞로 다시 한 번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6월까지만 보면 이들 병원이 버린 전체 의료폐기물량은 3777t이다. 이어 부산대병원이 338t, 경기 분당서울대병원 334t, 경남 양산부산대병원 323t 등의 순을 기록했다.

서울대병원과 부산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과 양산부산대병원, 충남대병원의 2015년 총 의료폐기물량은 2516t으로 나머지 10개의 지방거점국립대병원 1260t의 2배 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르스 병원’으로 찍힌 삼성서울병원도 경주 처리장에 버려

‘메르스 병원’으로 찍힌 삼성서울병원도 서울대병원과 같은 처리업체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폐기물이 경주 현장까지 오는데만 4시간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년간 이용돼 왔지만 이번엔 메르스 확산 사태 탓에 경주 인근 주민들이 불안에 떨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해당지역 의원인 경상북도 국회의원과 시·도의원들이 이들 병원의 의료폐기물 반입과정과 처리 절차 등을 긴급히 점검하는 일도 있었다.

병원과 처리업체 측은 “원천 밀봉상태에서 운반되고 현장 도착 즉시 소각처리하고 있다”며 감염 우려 등의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주민 불안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감염 위험 있는 의료폐기물, 도대체 ‘왜’ 멀리 가서 버릴까?

서울대병원과 제주대병원은 300㎞가 넘는 거리에도 5년간 한 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의료폐기물을 처리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반해 전북대병원의 5년간 의료폐기물 이동거리는 매년 3㎞를 유지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서울대병원과 제주대병원 등은 이렇게 멀리까지 가서 폐기물을 버리는 걸까?

박주선 위원장은 “안정적인 보건대책을 위해 국립대병원만이라도 불필요한 병원-의료폐기물업체간 거리를 줄여야 한다”고 정부대책을 주문했다.

현행 폐기물관리법 2조에는 의료폐기물을 ‘보건·의료기관, 동물병원, 시험·검사기관 등에서 배출되는 폐기물 중 인체에 감염 등 위해를 줄 우려가 있는 폐기물 등’을 지칭하고 있다.

문제는 결국 ‘돈’ 때문이었다.

한 병원 관계자는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처리업체를 선정을 하는데 저렴한 처리비용이 업체 선정의 주요한 요건으로 적용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처리하기 위해 굳이 멀리까지 가서 위험한 폐기물을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중간에 폐기물이 유출될 우려도 ‘돈 문제’ 앞에선 고려사항이 아니었던 셈이다.

박 위원장은 “외국에서는 폐기물로 인한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감염성 폐기물의 발생지 인근 처리’ 원칙을 두고 장거리 이동을 제한하고 있다”며 “의료기관의 폐기물 처리비용을 줄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료폐기물 이동거리를 줄여 감염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권역별 처리제도 등을 도입해 이동거리를 대폭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도 서면답변에서 “국립대학병원 의료폐기물 처리관련 지도ㆍ감독부처인 환경부와 협력하여 문제점이 개선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한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권역별 처리제도에 대해 “업체들의 처리능력 부족으로 인해 수거지연 및 처리단가 상승의 우려가 있다. 소각시설은 대표적인 혐오시설로서 증설에 한계가 있어 단기간에 업체의 처리능력 증가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수거지연 및 처리단가 상승, 업체의 담합 등의 문제점이 해결된다는 전제 하에, 권역별 처리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비용이 싸면 폐기물 업체 측도 그만큼 처리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폐기물을 며칠을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환경부는 메르스의 전국적 확산 이후에서야 ‘당일 소각’ 지침을 내렸지만 뒤늦은 조치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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