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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국정원 직원부터 부장판사까지…독버섯처럼 번지는 ‘악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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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국정원 댓글 사건’ 항소심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대선개입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가운데, 이번에는 현직 부장판사가 6년간 1만여개의 ‘악플’(악성 댓글)을 올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일반 네티즌 뿐 아니라 국가정보기관에 이어 법치주의와 사회정의, 인권의 최후 보루로 여겨지는 현직 판사에 이르기까지 ‘악플러’(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에 이름을 올리면서 대대적인 인터넷 자정(自淨)ㆍ규제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터넷 익명성을 악용한 악플러가 사회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인터넷에선 “세월호 생존자들 자소서(자기소개서)에 쓸 얘깃거리 늘었네” 등 눈을 의심케하는 글들이 다수 유포됐다. 인터넷 댓글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개인적인 불만 표출 수준을 넘어 사회갈등과 불신ㆍ혼란을 조장하는 아이콘으로 전락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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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부장판사가 수년간 악성 댓글을 달아온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익명성 뒤에서 내재된 ‘악’을 표출하고자 하는 심리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분석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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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네티즌 사이에 유명세를 타는 ‘네임드’ 악플러까지 등장했다.

프로야구 3년연속 홈런왕을 차지한 넥센 히어로즈의 박병호 선수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전담 악플러를 언급했을 정도다.

‘국민거품 박병호’라는 닉네임의 이 악플러는 박병호 선수의 기사마다 찾아다니며 꾸준히 ‘악플’을 달아 왔고, 그가 언급된 해당 인터뷰 기사에서는 그의 댓글에 대한 ‘추가 답글’이 5000여개나 달리기도 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듯이 익명성 덕분에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으면 악플러는 수위를 높여 댓글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면서 “인터넷의 익명성 뒤에 숨어서 자신의 내재된 악한 모습을 표출하고자 하는 심리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들 가운데 절반가량이 악성 댓글을 달아본 경험이 있고 20대도 30%에 육박했다. 50대 이상 중장년층에서조차 열 명중 한 명은 ‘악플’을 달아본 경험이 있었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사회법이나 현 제도로는 나쁜 사람을 제대로 단죄(斷罪)하지 못한다는 인식도 악플러를 양산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이라며 “공권력에 대한 불만 내지 불신이 있는 사람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비난 수위를 더 높이려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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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연극으로 보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대에서 자신의 지위에 맞춰 행동한다”고 전제한 뒤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가졌지만 그에 걸맞지 못한 인격을 가진 경우는 무대 뒤로 가 익명성이 보장되면 완전히 다른 행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송 교수는 “이런 일탈적 댓글 행위는 한국사회가 자신의 욕구를 표출하기 적절한 공간이 아니고, 주로 억압하고 자제해야하는 사회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하면서 한국의 사회문화적 특성이 이같은 ‘댓글 전성시대’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자유는 책임을 수반하기 때문에 단계적 제한을 둘 필요가 있다”며 “지금처럼 자유 지상주의의 온라인 활동이 지속될 경우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늘고 대한민국 공동체에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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