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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1심서 집유 원세훈 前국정원장, 항소심서 법정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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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 원심과 엇갈린 것은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1심은 “국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피고인들의 지시로 정치에 관여했지만, 대선에 개입하지는 않았다”며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각각 판단했다. 1심은 원 전 원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국정원 심리전단이 선거에 관해 특정한 여론을 조성하거나 특정 후보자를 낙선하도록 할 목적으로 조직적으로 지지 및 비방 글을 유포했다”며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원 전 원장에 대해선 “문제가 된 사이버 활동의 필요성과 방향성 등을 일관되고 강력하게 제시하는 한편으로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심리전단 조직의 규모를 강화하고 그 활동을 독려했다”며 궁극적인 책임을 물었다.

재판부는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2012년 8월 20일 이후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을 선거 개입으로 판단했다. 이는 심리전단 직원들이 2012년 1월 1일~12월 19일까지 전파한 트윗 글 27만3192건을 분석한 결과다.

재판부는 “2012년 8일 이전에는 정치 관련 글이 84~97%로 선거 관련 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선거 글이 77%로 정치 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국정원의 소중한 기능과 조직을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반대 활동에 활용했다”며 “국가기관이 사이버 공론장에 직접 개입해 일반 국민인 양 선거 쟁점에 관한 의견을 조직적으로 전파해 일반 국민이 사이버 공간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재판장인 김상환 부장판사(49·사법연수원 20기)는 판결을 마치면서는 동양 고전을 인용해 원 전 원장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는 “논어의 ‘위정’편에서 공자는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하여 공격한다면 이것은 손해가 될 뿐’이라고 했다”면서 “나와 다른 쪽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배척한다면 결국 자신에게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의미이고, 이단에 대한 공격과 강요가 결국 심각한 갈등과 분쟁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라고 말했다.

원 전 원장은 이날 재판에서 시종일관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판결을 들었다. 혹시라도 있을 법정 밖에서의 충돌에 대비해 법원에 신변보호 요청까지 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재판장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을 명령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저로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축소·은폐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던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앞서 지난달 29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아 희비가 엇갈렸다.

이날 선고 직후 시민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고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는 판결이며, 민주주의와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기여할 판결”이라고 평했다.

반면 수사 당시 공직선거법 적용에 반대했던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는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야당 측은 ‘사필귀정’이라며 여권을 압박했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국가기관이 불법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법적으로 인정된 만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과해야 하며, 박근혜 대통령 역시 국정원 대선 개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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