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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유병언’ 뒤에 숨어서 웃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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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회장 행방 묘연해지면서 야권 인사 연루ㆍ환경진보단체 커넥션 등 근거 없는 설 난무



“도망치자 달아나자 불행을 벗어나자. 슬픔이나 괴로움이 없었으면 좋겠네. 찾아가서 안아보자 늘 바라던 행복을. 기쁨이나 즐거움이 솟아나게 말이다.” 어쩌면 도피 중인 유병언 전 청해진해운 회장이 지금 되뇌고 있는 노래가락일지도 모른다. <찾아가서 안아보자 늘 바라던 행복을>이라는 노래의 일부다. 그가 ‘아해’라는 이름으로 지은 시에 강모씨가 곡을 붙인 노래다. 유 회장이 지은 노래는 기독교복음침례회, 속칭 구원파(이하 구원파로 표기) 행사에서 널리 불렸다. 구원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글소리>에 이 노래에 얽힌 사연이 실려 있다. 북미지역에서 열린 구원파 행사에 참가한 인사가 작곡가 강씨를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간다. 강씨는 “이런 노래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소망을 전해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구원파 “정부 책임 떠넘기려 여론몰이”

구원파 쪽에서는 “모든 것을 유병언 회장이 지시했다는 것으로 몰아붙이고 있다”고 항변했다. 전 대변인 조계웅씨는 이렇게 말했다. “유 회장이 법적으로 잘못한 것이 있으면 책임지는 것이 맞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나간 것이 아니냐. 자기들(정부) 책임은 도외시하고 덮어놓고 다 유 회장과 구원파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냐.”

박근혜 대통령은 6월 10일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못 잡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지금까지의 검거방식을 재점검하고 다른 추가적인 방법이 있는지, 모든 수단과 방식을 검토하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질책 이래 연일 구원파 관계자들이 체포되었다. 유병언이나 아들 대균씨의 도피를 도왔거나 횡령과 수배전단을 보면 관련이 있다는 혐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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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세월호 실종자 가족이 머무르고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의 스크린에 유병언 수배와 관련된 뉴스가 나오고 있다. /강윤중 기자


유 회장은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어떤 책임이 있는 것일까. 수배전단을 보면 일단 유 회장은 특경법, 즉 특정경제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을 받고 있다. 전단의 ‘개요’에 따르면 유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회장으로, 청해진해운·천해지 등 법인 자금의 횡령, 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다. 법적으로 엄밀히 따지면 세월호 침몰과는 별건의 혐의다. 구원파 쪽에서 억울해하는 것도 그 부분이다.

유 회장이 검찰에 출두하거나 검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공소장은 나오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적용된 혐의는 세월호 사건과 관련한 다른 이들의 공소장을 통해 간접적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의 공소장을 보면 “청해진해운은 사실상 유 회장 일가의 소유”라고 되어 있다. 공시되어 있는 청해진해운의 김한식 대표 지분 11.6% 중 10%는 “유 회장이 차명한 것”이라고 공소장에는 적혀 있다. 또한 배의 증축·개조과정에 자신의 사진 전시실을 만드는 등 유 회장의 구체적 지시가 있었고, 특히 올해 1월에는 김한식 대표가 유 회장에게 “증축공사 때문에 복원성 문제가 생겨 화물을 많이 실을 수 없다”고 보고했으나 유 회장은 “선령이 다한 오하나마호부터 선차적으로 매각하라”고 지시했다고 검찰은 밝히고 있다. 김 대표 공소장의 각주에 따르면 전시실, 선주실 등의 디자인 작업은 유 회장의 딸 유섬나씨가 대표로 있는 모래알 디자인에서 맡았다.

정치인 등 ‘유병언 장학생’ 리스트도

유 회장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갖가지 정치적 해석을 더한 설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 6월 중순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 회장과 비슷한 외모를 지닌 인사와 삼계탕으로 오찬을 하는 사진이 돌았다. 하지만 사진 속의 인물은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역임한 조윤제 서강대 교수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 직후부터 카카오톡 등 폐쇄형 SNS 등을 통해 현재까지 돌고 있는 ‘유병언 장학생 리스트’라는 편집사진은 아무런 설명 없이 유병언의 사진과 야권 정치인·시민단체·재야인사들 36명의 사진을 붙여놓은 것이다. <주간경향>은 이 리스트 상단에 편집되어 있는 한 인사를 접촉해 물어봤다. “누가 이런 사진이 돌고 있다고 해서 봤는데, 왜 내 얼굴이 거기에 같이 나와 있는지 모르겠다. 악의적이긴 한데 그냥 웃고 말았다”가 돌아온 그의 답이다.

이 리스트를 기자에게 전한 사람은 과거 MB정부 시절 고위직으로 청와대에 몸을 담았던 인사다. 그는 “박 대통령이 유병언 잡기에 올인하는 것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정부 책임을 돌리려는 의도도 있지만, 동시에 유 회장의 야권 커넥션도 공격하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의 의미도 갖고 있다”며 “리스트의 사실 여부를 떠나 틀림없이 내부에서 유병언의 야권인사 관계에 대한 보고서가 작성돼 청와대 고위라인까지 올라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원파 밖의 유병언 커넥션에 대해 제일 많이 나오는 것이 환경운동 관련설이다. 구원파에서 수련회를 떠날 때 공지를 보면 다른 일반 교회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유기농이 아닌 식품은 ‘절대’ 가지고 오지 말라”는 당부다. 왜 유기농을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성경(고린도후서 7:1)을 근거로 들고 있지만, 특히 1990년대 후반 이후 유 회장과 구원파에서 유기농이나 건강, 피의 순환의 중요성 등을 강조해왔다는 것이 구원파를 탈퇴한 인사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환경·생태단체나 먹거리운동 관련 단체나 인사들과 교류해왔다는 것이다.

실제 주장이 나왔다. 지난 지방선거 선거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5월 29일, 새누리당 지지단체인 새인천창조포럼은 기자회견을 열어 “구원파 환경단체인 한국녹색회가 참여한 야권연대로 인해 송영길 시장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에 당선됐다”고 송 전 시장과 구원파의 유착의혹을 주장했다. 송영길 후보 측은 즉각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새인천창조포럼 대표를 고발했다.

7월 2일, 인천지검은 한국녹색회의 김상기 운영위원장을 전격 구속했다. 유 회장 부인 권윤자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다. 세월호 사건 직후, 한국녹색회는 홈페이지에 장문의 성명을 게재해 한국녹색회와 구원파 관련설을 부인했다. “회원 개개인의 종교성향일 뿐, 한국녹색회는 1981년 창립되어 활동해온 순수 환경단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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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금수원에서 신도들이 경찰과 대치하던 지난 5월 16일, 조계웅 전 대변인(가운데)이 나서 검찰 압수수색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그때는 종교적 색채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당시에도 인터넷에 보면 한국녹색회가 구원파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조금씩 나왔었다. 사실 물어보기도 민망한 이야기인데, 나중에 좀 더 친해졌을 때 대놓고 물어봤다. 구원파 사람들이 있기는 한데, 순수한 환경단체라고 설명해서 더 이상 캐묻기도 뭐해서 그 후에는 물어보지 않았다.” 당시 한국녹색회 등과 함께 굴업도 보존운동을 펼쳤던 핵심인사의 말이다. 환경운동과 한국녹색회를 잇는 핵심인사는 당시 한국녹색회 정책실장을 맡았던 故 이승기씨다. 그는 2012년 2월 굴업도에서 자연탐사 중 실족사로 사망했다.

“이 실장의 사망 후 한국녹색회의 태도가 돌변했다”는 것이 굴업도 보존운동에 나섰던 인사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이름까지는 몰랐지만 얼굴은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갑자기 정색을 하고 모른 척하니 사실 어안이 벙벙했다.” 또 다른 핵심인사의 증언이다. 이씨의 죽음과 관련해서 구원파 쪽 인사들은 “아직도 의문이 많다”고 주장한다. 실제 기자가 접촉한 구원파 고위관계자도 “실족사라고 하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반면 지역환경운동 진영에서는 “실족 당시 현지 이장 등 여러 사람들이 목격했고, 일치된 진술을 하기 때문에 의혹이 될 만한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금은 색다른 증언도 나온다. 또 다른 인천지역 환경단체 쪽 핵심관계자의 말. “이 실장이 중간에 끼여 고민이 많았다. 환경단체들과 활동하면서 영화도 만들고 센터를 짓겠다는 약속도 했는데, 녹색회 쪽에서 ‘자기들 땅인데 왜 내놔야 하냐’고 반발해서 윗선인 녹색회 회장(정윤재)도 안 하겠다고 하니….”

이 실장의 죽음은 연이어 양측이 ‘갈등’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해 열린 환경영화제에서는 이 실장 등의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아! 굴업도’가 개막작으로 상영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돌연 취소되었다. 왜였을까. 당시 홍보를 담당했던 환경재단 관계자는 “영화제를 개최하는 장소인 CGV의 소유주 CJ의 외압설 등이 나왔지만 전혀 엉뚱한 이야기였고, 속사정은 한국녹색회 측의 판권 주장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김영우 당시 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한국녹색회 쪽에서 그 영화의 소유권은 자신들이라는 내용증명을 보내왔고, 그 부분에서는 감독과 입장이 어긋났다”며 “이 실장의 부인을 비롯해 한국녹색회 관계자들과 대면을 했었는데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아 결국 상영은 취소되었고, 지금까지 그 영화는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환경운동과 연결 한국녹색회 홈피 폐쇄

유병언과 환경 내지는 진보운동의 커넥션 주장은 일부 보수매체 등을 통해 끝없이 제기된다. TV조선은 전 구원파 관계자의 말을 빌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광우병 대책회의의 지도부에 구원파 관계 인사가 있었고, 유모차 부대는 유병언의 아이디어였다”고 보도했다. 유모차카페 관계자는 “당시 게시판 상에서 하이힐 부대도 모이고 여고생 부대도 모이는데 왜 유모차 부대는 없냐는 농담성 발언이 올라온 것이 모이게 된 계기”라며 “모임을 주도한 사람들 모두 구원파와 관계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암으로 사망한 해직언론인 부인으로 재야운동과 관련이 있다가 나중에 구원파에 합류한 유명 드라마 작가와 관련된 커넥션 이야기도 나온다. 구원파 월간지 <글소리>에 4회에 걸쳐 게재된 이 작가의 수기와 기타 언급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그 후에도 재야인사들, 문화예술계 인사들과의 친분은 계속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직언론인 출신인 한 재야원로는 “모임에서 뵌 지는 한참 되었고, 그분이 구원파가 되었다는 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사실 한국녹색회 관련 수사가 박근혜 정권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이 단체의 장정수 이사는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특별직능 해외대책위원장이라는 직함을 맡아 활동했다. 한국녹색회 측은 김 운영위원장 구속을 전후해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외부와 연락을 끊었다. 한국녹색회 김상기 운영위원장을 구속한 것과 관련, 인천지검 관계자는 “유병언 도피와 특경법 위반 혐의와 관련된 부분만 수사하고 있을 뿐”이라며 정치적 해석에 대해서 경계하는 반응을 보였다. 조계웅 구원파 전 대변인은 “이번 사건이 나기 전엔 원래 기독교인들은 많이 보수적인 편이었다”며 “만약 우리가 보수든 진보든 그 어떤 정치적 커넥션을 가지고 로비를 했다면 지금처럼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상황이 왔겠느냐”고 반문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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