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7 (목)

"3월 강서구 재력가 살해…서울시의원이 청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서 지난 3월 발생한 '재력가 살인사건'은 빚 독촉에 시달리던 현직 시의원이 친구에게 살해를 사주해 벌인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5억원 채무 관계에 있는 수천억 원대 재력가 송 모씨(67)를 살해하도록 사주한 혐의(살인교사)로 서울시의회 의원 김모 씨(44)를 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김씨는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 6ㆍ4 지방선거에 출마해 재선됐으나 경찰에 체포된 뒤 탈당해 현재는 무소속 상태다.

◆ "한국 오지 말고 목숨끊어라"

경찰은 또 김씨의 사주를 받아 송씨를 살해한 팽 모씨(44)도 구속했다. 팽씨는 지난 3월 3일 오전 12시 40분께 강서구 내발산동의 송씨 소유 건물에서 송씨의 머리 등을 둔기로 수십 차례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2000년 국회의원 보좌관 시절 지인 소개로 수천억 원대 재력가 송씨를 처음 만난 뒤 연을 이어왔다. 그러다 2010~2011년 여러 차례에 걸쳐 송씨에게서 총 5억여 원을 빌렸고, 2012년 말께 송씨로부터 "빨리 돈을 갚으라"는 빚 독촉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김씨가 경찰 조사에서 범행 일체를 부인하는 탓에 정확한 돈의 사용처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가 송씨에게 일반 토지를 상업지구로 바꿔 땅값을 올려주겠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팽씨 진술에 따르면 6ㆍ4 지방선거 재선을 준비하던 김씨는 송씨가 "선거에 출마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자 불안감이 커졌고, 결국 팽씨에게 송씨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 팽씨가 김씨를 매우 신뢰하고 자랑스러워했다는 주변 진술이 있다"며 "이 때문에 팽씨가 이런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팽씨는 처음 사주를 받은 2012년 말부터 1년여 간 범행 장소를 수십 차례 드나들었으면서도 범행을 시도하지 못하다 김씨가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에도 죽이지 못하면 더 이상 못 기다린다"며 압박하자 결국 지난 3월 3일 송씨를 살해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팽씨는 구금돼 있던 중국 구치소에서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체포 사실을 알렸지만 김씨로부터 "네가 한국에 들어오면 난 끝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실제 팽씨는 구치소에서 여러 차례 자살을 기도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구치소에 있던 팽씨와 통화한 사실을 인정했으나 팽씨가 송씨를 살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 김 의원은 혐의 강력 부인

김씨의 사주를 실행에 옮긴 팽씨 행적이 워낙 치밀하고 주도면밀했기에 하마터면 경찰 수사가 미궁에 빠질 뻔했다.

팽씨는 경찰 조사에서 김씨와 범행을 약 1년6개월 전부터 모의했다고 진술했다. 송씨와 가깝게 지내던 김씨는 사전에 송씨 일정과 출퇴근 시간, 동선 등을 시간대별로 자세히 파악한 뒤 팽씨가 흔적을 남기지 않고 범행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행동방침을 지시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실제 경찰은 사건이 벌어진 장소에서 팽씨가 범행에 사용한 도구나 옷가지, 지문 등 남긴 흔적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사건 발생 시간 역시 밤중이어서 주변 폐쇄회로TV(CCTV) 화면에는 피의자 체형만 희미하게 나타날 뿐 얼굴이 드러나지 않아 별 소득이 없었다.

팽씨는 범행 당일 인천에서 강서구 내발산동 범행 장소로 오면서 택시를 수차례 갈아탔다.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내려 범행 장소까지 걸어가고 불필요하게 길을 여러 번 건너는 등 수법으로 추적을 어렵게 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약 2주 뒤인 지난 3월 18일 탐문수사와 도주 경로 분석 등을 통해 팽씨를 피의자로 특정했으나 이미 중국으로 도피한 상태였다. 이에 경찰은 팽씨를 인터폴에 적색 수배하고 중국 공안과 공조한 끝에 사건 발생 2개월여 만에 팽씨를 붙잡았다. 그러나 팽씨의 신병을 국내로 인도받는 데에만 약 한 달이 걸려 김씨는 사건 발생 4개월 뒤인 지난 24일에야 검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모 의원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김 의원은 "차용증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송씨가 써달라고 해서 써준 것이지 실제 돈을 빌린 적이 없다"며 "팽씨가 내게 빌려간 돈을 갚아야 해 송씨를 상대로 강도질한 것"이라고 밝혔다.

[윤진호 기자 / 김시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