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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한국 축구’와 ‘박근혜 정치’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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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감독 3번 바뀐 대표팀·갈팡질팡 인사 박근혜 정부

측근 의존·인맥 중시, 무기력한 정보력까지 ‘닮은 꼴’


새벽잠을 설치며 한국과 벨기에와의 경기를 본 사람들은 “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속 시원한 일 하나 없고, 속 터지는 일만 쌓여가니, 어느새 “되는 일이 없다”라는 자조가 퍼진다.

27일 한국 축구 대표팀의 브라질 월드컵 벨기에전을 보면서 탄식한 국민들은 무엇보다 리더십의 부재를 아파하는 것 같았다. 이런 반응을 보면서 문득 박근혜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 운영과 리더십 부재가 떠올랐고, ‘한국 축구’와 ‘박근혜 정치’가 닮은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축구 대표팀은 팬들의 지지를 먹고 자란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으니 국민으로 확장해도 무방하다. 그런 만큼 기대도 크고, 실망도 큰 법이다. 대표팀이 브라질로 향하기 전, 대한민국은 ‘사상 첫 원정 8강’ 목표에 들떠 있었다. 국민들은 ‘잘하면 될 거야’라며 낙관적인 기대에 사로잡혔지만 ‘희망 고문’이 끝나는 데는 월드컵 개막 뒤 채 보름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 대표팀은 H조 가운데 16강 진출의 제물로 북아프리카의 알제리를 꼽았다. 만만한 알제리를 1승 제물로 삼고, 우리보다 전력이 강한 러시아나 벨기에와 비기면 16강에 간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정작 뚜겅을 열어보니, 연간 1천억원의 예산을 자랑하는 대한축구협회의 정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보가 없으니 알제리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23일 있었던 알제리전에서 한국 대표팀은 새로 선보인 5명의 알제리 선수에 대해 잘 몰랐다. 첫골을 터뜨린 알제리의 이슬람 슬리마니는 슈팅력을 갖춘 특급 선수였고, 네번째 골을 넣은 야신 브라히미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득점원이었다. 이들의 속도와 개인기에 무너지면서 한국은 전반에만 3골을 내주며 공황에 빠졌다.

대표팀의 실패는 ‘축구 정치’가 부른 ‘화’라고 볼 수도 있다. 토론과 합의를 통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아니라 파워가 센 특정인의 입김과 인맥·연줄에 의해 지배된 것이다.

애초 2014 월드컵을 치를 한국 대표팀의 사령탑은 조광래 감독이었다. “생각하는 축구” “모두가 120% 뛰는 축구” “패스 축구”를 강조하는 조 감독은 2010년 취임 뒤 2014년 월드컵을 겨냥해 팀을 조련하려고 했다. ‘젊은 선수 발굴’ ‘해외파 중용’ ‘만화 같은 패스 축구’로 모처럼 팬들을 기쁘게 했다. 하지만 그는 2012년 한-일 평가전 패배를 이유로 경질됐다. 평가전에서 졌다고 자르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아마 자르고 난 다음 한국 대표팀이 성공했다면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조 감독에게 믿고 맡겼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한 것은 조광래 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은 최강희 감독은 기존에 입혀왔던 대표팀의 새로운 색깔을 희석시키면서 간신히 월드컵 본선을 통과시켰고, 꽤 이른 나이에 지휘봉을 잡은 홍명보 감독은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색깔을 찾기 힘든 축구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가 정몽준 명예회장이라는 ‘거물’ 덕분에 급성장했고 2002 한-일월드컵도 이뤄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이 결국 이번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로 나타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에서 축구 대표팀의 실패가 겹쳐지는 것은 여러 대목에서다. 박 대통령은 출범하면서 ‘국민 대통합’과 ‘경제 민주화’라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웠다. ‘국민 대통합’은 우리 사회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지 않으면 21세기의 도전을 넘어서기 어렵고, ‘경제 민주화’는 압축 성장의 후유증인 재벌 문제와 양극화 해소 없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동력을 찾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나왔다.

실제로 국민들은 큰 기대를 했고, 또 믿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의 주요 직책들이 특정 지역과 특정 집단 출신 일색으로 채워졌고, 심지어 유신시대의 인물들이 국정에 관여했고, 야당과 시민사회는 아예 배제됐다. 동반 성장과 양극화 해소 등 경제민주화 역시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하나둘씩 후퇴시키고 있다. “경제민주화, 그거 이미 끝난 거 아닌가요?”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세월호가 침몰한 4월16일 박 대통령은 기울어지는 배를 보면서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신속하게 구호하라”고 지시했다. 국민들은 전원 구조에 대한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300명 가까운 희생자를 안고 침몰할 시점에 박 대통령이 과연 정확한 상황 보고를 받았는지 궁금하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파문 역시 정부의 정보 능력을 의심케 한다.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은 그동안 축구협회를 암묵적으로 지배해온 ‘보이지 않는 손’을 연상시킨다. 철저하게 자기가 아는 몇몇 측근이나 특정 인맥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일방적이다. 세월호 참사 뒤 거국적으로 인재를 등용할 것을 당부한 도올 김용옥의 충고는 범인들에게 가슴이 찡하도록 들렸지만, 대통령한테는 전혀 들리지 않은 것 같다.

한국 대표팀은 이번에 브라질에 들어가기 직전 풍토병에 대비한 예방주사를 맞았다. 주사의 후유증으로 열이 나거나, 컨디션에 나쁜 영향을 받은 선수도 있었다. 또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 후보에 올랐다가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한 선수들에게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사의를 밝힌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표를 물리고 유임시켰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다 안되면, 내 맘대로’라는 식으로 비쳐진다. 축구협회는 인맥과 파벌 등으로 10년 구상은 고사하고 4년 월드컵 구상도 하지 못했다. 축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현장 축구인들의 고언에 애써 귀를 닫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에서 자꾸 한국 축구의 실패가 겹쳐진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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