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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혁신학교, 교사 열정이 관건 … 학력 떨어지면 기피 학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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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내 1700개로 늘린다는데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 개발 땐 성공

학부모 "선진국 못지 않다" 만족

중앙일보

11일 서울 강동구 강명초등학교에서 4학년 학생들이 목공수업을 받고 있다. 2011년 개교한 이 학교는 4년째 혁신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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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9시 서울 강동구 강명초 2학년 교실. 수학시간이지만 학생들이 교실 바닥에 앉아 ‘둥글둥글 둥근 세상’이란 동시를 낭독하고 있다. 동요에 맞춰 율동을 하며 게임도 했다. 수업 전 20분 동안 교사와 학생들이 몸과 마음을 깨우는 ‘아침 열기’ 활동이다. 고학년 학생들은 이 시간에 요가나 발레를 하기도 한다. 이 학교 김영동 교장은 “체험형 수업을 80분 동안 진행하는데, 1교시 시작 때 졸음도 쫓고 집중도를 높이려고 특별한 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부모 이영미(42·여)씨는 “아이가 수학시간에 분수를 배울 때 동화책 속 피자를 몸으로 표현해보며 익혔다고 하더라”며 “미국에서 귀국 후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다 전학 왔는데 이 정도면 선진국에 못지않다고 느낀다”고 했다.

같은 시각 1층 시청각실에선 학부모 8명이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다. 강사가 “어머님들, 잘 모르겠으면 ‘반짝반짝 작은 별’이라고 노래를 불러보세요”라고 말하자 웃음보가 터진다. 이 학교엔 글쓰기·합창 등 학부모 동아리가 10개인데, 현재 127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부영 교육과정부장은 “학부모 동아리는 학교와 학부모의 소통 창구”라고 설명했다. 이 학교는 2011년 개교하면서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6·4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 당선자가 13명이나 배출되면서 혁신학교가 전국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2009년 처음 도입한 혁신학교는 현재 578곳이다. 진보교육감이 배출됐던 서울·경기·광주·전북·전남·강원 지역에 있다. 이번 선거에서 조희연(서울) 당선자는 혁신학교를 임기 내 200곳으로, 이재정(경기) 당선자는 1000곳으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인천·충북·충남·부산·경남·제주에서 당선된 진보교육감들도 혁신학교를 신설한다는 입장이어서 4년 내 1700여 개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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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혁신학교 수만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본지가 혁신학교를 조사한 결과 성과를 내는 곳과 실패한 곳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성공한 혁신학교에선 무엇보다 교사들의 열정이 돋보였다.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중 교사들은 매주 공개수업을 열고 다른 교사의 수업을 참관한다. 도덕교사가 영어수업 때 아이들을 관찰하며 집중도 등을 살핀 뒤 교사연구회에서 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강명초 역시 경력 10년 이상 교사들이 개교 6개월 전부터 교육과정을 연구했다. 이 같은 교사들의 노력은 교육 프로그램의 질을 높였고, 학생 호응으로 이어졌다.

반면 외면받는 혁신학교도 많다. 지정 3년째인 서울 강북의 한 초등학교 교장은 “곽노현 전 교육감 때 등을 떠밀리다시피 해서 지정됐는데 교사들의 연구 노력이나 학부모들의 호응이 거의 없었다”며 “ 방과후 프로그램이 조금 늘었을 뿐 특별한 프로그램조차 없다”고 실토했다. 4년 전 혁신학교로 지정된 서울 한 고교는 비선호 학교로 전락했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 있지만 대입 실적이 매년 떨어진 것이다. 전모(49·여)씨는 “1년에 1억원 넘게 지원되는 혁신학교라지만 두발·복장 제한만 없앤 ‘날라리 학교’로 회자되고 있다”며 “중학생 딸이 있는데 그 고교로는 절대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진보교육감들이 무턱대고 혁신학교 수만 늘리려 할 것이 아니라 성공 요인부터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산 확보 가능성이 1순위 고려 요인이다. 신설 혁신학교당 1억~1억5000만원을 지원해온 서울은 조 당선자의 공약대로라면 173억원가량이 필요하다. 아들을 혁신 중학교에 보내는 하모(50·경기도 고양시)씨는 “수업방식이 대입 전형과 동떨어져 수학·영어는 과외를 시킨다”며 “면학 분위기가 느슨해 고교는 혁신학교를 보내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혁신학교지만 수학·영어 수업에 보조 교사를 두고, 시험 문제 난도를 높게 조절하는 호평중 사례 등을 참고해야 입시라는 현실과의 괴리를 좁힐 수 있다. 서울 한 초등학교 교장은 “지정 취소를 원하는 혁신학교도 많은 상황이므로 수만 늘리려 했다간 전체 혁신학교의 질적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진 기자

◆혁신학교=암기·주입식 교육보다는 협력·토론 중심의 수업을 지향한다. 학급당 학생 수가 25명 정도다. 교사의 자발성을 기반으로 교과과정 운영에도 자율성이 주어진다. 학교당 한 해 6000만~1억5000만원가량의 예산이 지원된다.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v2010/power_reporter.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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