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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기고/5월 1일] 해양실크로드, 혜초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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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신라의 혜초는 약 1,300년 전 당나라 땅을 밟는다. 그는 남천축국에서 온 승려를 만나 불교에 눈을 뜬다. 그리고 723년 광저우에서 바닷길을 이용해 천축국으로 배움의 길을 떠난다. 천축국은 지금의 인도다. <왕오천축국전>은 그가 인도의 5개 나라를 답사하며 쓴 여행기다. <삼국유사>에는 '서울 밝은 달 아래 밤 깊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로 시작하는 '처용가'가 나온다. 지은이 처용은 서역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의 서사시 <쿠쉬나메>는 페르시아 왕자가 신라로 망명하여 신라 공주와 결혼했다고 한다. 이처럼 당시에도 활발한 교류가 있었고, 이들은 지금 해양실크로드라고 불리는 바닷길로 오갔다.

실크로드는 1877년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이 처음 사용하였다. 비단길이라고도 하는 실크로드는 길에 비단이 깔려있어 붙여진 이름은 아니다. 동서양을 잇는 교역 통로를 통해 중국에서 수출되는 주요 물품이 비단(실크)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실크로드는 크게 해양실크로드와 육상실크로드가 있고, 육상실크로드에는 초원길과 오아시스길이 있다. 해양실크로드는 어떤 경로였을까? 중국 광저우에서 출발해 베트남과 말레이반도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까지 간다. 그리고 북서쪽으로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고 미얀마를 따라 계속 항해하면 인도에 도달한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항해술이 발달하지 못해 육지를 보며 해안을 따라가는 뱃길이 안전하였을 것이다.

해양수산부, 경상북도, 한국해양대학교는 공동으로 해양실크로드 탐험을 추진하고 있다. 고대 문명 교류 통로 가운데 하나인 바닷길을 재조명하여 우리나라가 해양 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올해 해양실크로드 탐험은 지난해 경주에서 출발하여 중국 시안, 중앙아시아, 터키를 잇는 육상실크로드 탐험의 후속 프로젝트다. 지난달 1일 경주에서 열린 '2014 해양실크로드 글로벌 대장정 발대식'을 시작으로 탐험 준비를 위한 돛이 올랐다.

탐험은 해양대의 6,700톤급 실습선 한바다호를 타고 9월 16일부터 11월 12일까지 약 60일간 진행될 예정이다. 항로를 따라 미리 가보자. 우리나라를 출발하여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인도, 오만을 거쳐 이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스리랑카, 미얀마 등 모두 9개국 10개 항구를 들리게 된다. 탐험 거리는 지구 둘레의 약 40%인 1만5,500여 Km에 달한다.

방문국 항구에 들릴 때마다 기항지 행사가 계획되어 있다. 한국의 날 행사를 통해 우리 문화를 알리고, 현지의 해양실크로드 유적지를 답사하고 전문가들과 학술세미나도 계획돼 있다. 중국 광저우의 해양실크로드 박물관과 인도 콜카타의 캘커타대에는 혜초기념비를 세울 예정이다.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순항훈련에 강의를 위해 참가해서 느낀 바이지만, 기항지 행사는 어떤 민간 외교 활동보다 효과가 크다. 현지인과 같이 어울리면서 자연스레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 과학기술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중국이 출발점으로 되어있는 실크로드를 경주까지 연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실크로드를 현대적으로 분석하면 우리나라가 그 출발점에 서야 하는 당위성을 알 수 있다. 실크(SILK)를 재해석해보자. 에스(S)는 조선(ship building)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조선 산업 분야에서 세계 1위 국가이다. 아이(I)는 정보기술(IT) 또는 정보통신기술(ICT)이다. 이 분야 역시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엘(L)은 노동(Labor)을 의미한다.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우리나라로 몰려들고 있다. 한편 다문화가정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케이(K)는 케이팝(K-pop)을 비롯해 세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한류 문화이다. 이제 실크로드는 비단길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새로운 개념의 실크로드가 되어야 한다.

김웅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ㆍU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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