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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유럽 순방 시진핑, 프랑스 도착… 양국 친근감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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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5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에 도착해 6일 간의 유럽 순방 일정을 시작했다.

시 주석은 이날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서면으로 발표한 ‘도착 연설문’을 통해 “60년 전 중국과 프랑스 양국은 냉전의 장벽을 돌파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했다”며 “시종일관 중국과 서방 관계의 선두를 걸으면서 상이한 사회 제도를 가진 국가가 평화공존·협력호혜하는 전범을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이어 “동·서방 문명의 중요한 대표로서 중국과 프랑스는 오랫동안 서로를 흠모·흡수해왔다”며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일찍이 중화 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중국 인민 역시 볼테르, 디드로, 위고, 발자크 등 프랑스 문화의 거장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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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해 가브리엘 아탈 프랑스 총리의 영접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자국 문화에 자부심이 강한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타국 문화에 대해 이처럼 높이 평가하는 일은 흔치 않아 시 주석의 이번 입장문은 관심을 끌었다. 시 주석은 2014년 프랑스 첫 국빈 방문 때도 사르트르, 몽테뉴, 몰리에르, 스탕달, 밀레, 모네, 마네 등 프랑스가 배출한 철학자와 예술가 20여명의 이름을 줄줄이 거론하며 친근감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또 “양국 수교 60주년에 즈음해 다시 아름다운 프랑스 땅을 밟으니 더 친근감이 느껴진다”며 “이번 기회를 빌려 나는 삼가 중국 정부와 인민을 대표해 프랑스 정부·인민에 진심어린 인사와 축원을 전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미국·유럽연합(EU)의 견제 속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프랑스에 공을 들여왔다는 점을 보여주듯 이날 시 주석은 이례적인 도착 연설문에서도 최대한 예의를 갖춘 셈이다.

시 주석의 국빈 방문 일정은 6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시 주석,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6일 오전 엘리제궁에서 EU와 중국 간 무역 이슈 등을 두고 3자 회담을 한다. 3자 회담에서는 최근 중국과 EU 사이의 쟁점으로 떠오른 중·러 관계나 유럽 내 중국 간첩 의혹 사건 등 안보 쟁점과 전기차·태양광 패널·풍력터빈 등 산업 분야의 중국 업체 조사 같은 통상 문제가 폭넓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오후에는 의장대 사열, 중국국가 연주 등 공식 환영 행사가 앵발리드에서 열린다. 환영 행사 뒤 양국 정상은 엘리제궁으로 이동해 정상회담을 연다. 여기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파리 올림픽 기간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을 위해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양 정상은 회담 결과를 공동 발표한 뒤 양국 경제인이 모인 경제 포럼장에서 폐막연설을 하고, 이후 엘리제궁 국빈 만찬에 참석한다.

시 주석은 프랑스에서 양자 관계를 다지면서 미국·EU 중심의 중국 견제 연대에 균열을 내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은 시 주석 방문을 앞두고 이날 현지 신문 라트리뷘과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중국과) 상호 호혜를 확보하고 우리 경제 안보 요인들이 고려되기를 바란다”며 “유럽에서는 여전히 중국을 본질적으로 기회의 시장으로 보는 시각이 있기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유럽 파트너들과 관계 강화를 원한다면 우리의 입장을 들어보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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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파리 오를리 공항에 도착해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언론들도 시 주석의 유럽 방문이 중국과 유럽 관계를 복원하고 미국과 유럽 사이를 갈라놓기 위한 행보로 해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시 주석의 유럽행에 대해 “유럽의 대미 유대를 느슨하게 하는 기회를 잡으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시 주석이 찾는 세 나라는 미국의 전후 세계질서 구축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나라들이자 중국을 필수적인 균형추로 간주하며 중국과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은 시 주석의 이번 유럽 방문을 서방 동맹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시 주석의 노력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심 외교정책 목표에 대한 유럽의 지지가 사라지고 있는 신호와, 미래 나토를 위한 미국의 지원에 대한 증가하는 불확실성 때문에 미국은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을 긴밀히 주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빈 방문 이틀째인 7일 두 정상 부부는 프랑스 남부 오트 피레네로 옮겨 점심을 함께한다. 이곳은 마크롱 대통령의 외할머니가 2013년까지 살던 곳으로 마크롱 대통령이 종종 방문하는 ‘마음의 고향’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 마크롱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당시 수도 베이징에서 1차 회담을, 베이징에서 약 1900㎞ 떨어진 남부 광둥성 광저우의 쑹위안에서 2차 비공식 회담을 마련한 바 있다.

그간 시 주석이 외국 정상을 베이징이 아닌 지역에서 만난 사례가 국경 갈등을 풀 외교적 목표가 있었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나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 중국의 안배는 마크롱 대통령을 향한 극진한 대접으로 해석됐다.

이에 프랑스 측이 준비한 파리 바깥에서의 일정은 지난해 마크롱 대통령 초청에 대한 보답 차원이자 개인적 친밀감을 높이려는 사교 행사로 보인다.

베이징=이우중 특파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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