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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현장의 시각] 원유 매장량 1위 베네수엘라 몰락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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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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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의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원유 매장량이 3000억배럴에 이르는 세계 원유 매장량 1위 나라다. 천혜의 자원을 바탕으로 1990년대까지 경제 활동이 왕성했던 베네수엘라는 1990년대 후반 차베스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울기 시작했다.

1998년 정권을 잡은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사회주의 정책 노선을 대대적으로 시행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에 이어 무상주택까지, 석유를 팔아 번 돈으로 복지를 대폭 확대했다. 국영상점을 운영해 상품을 시장 가격의 절반으로 공급했다. 차베스에 대한 국민들의 애정은 견고해졌다. 국가 주도 경제에 베네수엘라 내 기업이 문을 닫았고, 제조와 유통 기반이 붕괴했지만, 차베스는 이를 국유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2000년대 들이닥친 국제유가 폭락으로 베네수엘라 경제는 휘청였다. 부패한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까지 이어졌다. 시장이 무너진, 경제 기초 체력이 사라진 베네수엘라의 국민들은 이후로 2024년 현재까지 극빈한 삶을 살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국가 재정을 고려하지 않고 포퓰리즘성 정책으로 일관한 나라가 어떻게 위기를 맞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4·10 총선에서 공약으로 국민 1인당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을 내걸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선거 승리를 동력 삼아 이를 실제로 시행하려고 밀어붙이고 있다. 민생 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해 전 국민에게 4인 가족 기준 100만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주면, 소비 진작으로 이어져 내수 회복에 기여할 것이라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국민 5000만명에게 25만원 씩 주려면 12조5000억원, 약 13조원가량의 재원이 필요하다. 기존 예산을 조정해서 마련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결국 이 돈을 마련하려면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해야 한다. 일단 쓸 테니 미래세대가 갚으라는 이야기다.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는 약 102조원으로 올해보다 16조원이 더 많다. 추가적인 국채 발행은 적자 규모를 키우고, 재정 불안과 대외신인도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지난해 한국의 국가채무(중앙+지방정부 채무)는 1126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2018년까지만 해도 600조원대이던 국가채무는 지난 정부 임기를 거치면서 1000조원대로 ‘퀀텀 점프’를 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0.4%를 기록했다. 비기축통화국 평균(37.9%~38.7%)보다 월등히 높다.

재정 지표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시기라고 경고를 보내고 있음에도, 재정을 풀자고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게다가 지금은 고물가 위기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시중에 풀려버린 13조원의 민생회복지원금이 수요를 자극해 물가를 끌어올리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김미루 연구위원은 2일 ‘KDI 현안분석, 최근 내수 부진의 요인 분석-금리와 수출을 중심으로’ 브리핑에서 “대규모 내수 부양 등 인플레이션 안정 추세를 교란할 수 있는 정책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전국민지원금 등 현재 물가안정세를 흔들 수 있는 재정 정책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잡히던 물가가 다시 치솟으면 그 피해는 온전히 서민 취약계층이 짊어진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생활비가 이전보다 많이 들면 그만큼 월급이 감소한 것처럼 느껴진다.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을 보이지 않는 세금(stealth tax)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워런 버핏은 한 발 더 나가 ‘최악의 세금’이라고까지 혹평한다.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서민 가구의 생계 불안이 더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으로선 ‘그래서 지원금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고물가로 어려워진 가구의 생계 안정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질 인플레이션은 어떡할 것인가.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윤희훈 정책팀장(yhh22@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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