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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고] 쿠팡 3조 투자, 현대차-LG 168조보다 무거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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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68조, LG그룹 100조, 쿠팡 3조. 이 숫자들로 며칠간 언론이 시끄러웠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조 단위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한 세 기업의 소식에 정부도, 국민들도 환영하는 모양새다.

전자신문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현대차는 전동화, SDV 등 미래 핵심분야에의 집중 투자와 대규모 인재 채용을, LG는 인공지능, 차세대 디스플레이 미래사업 등에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쿠팡은 3조원을 투자해 물류센터 8곳 이상을 짓고 도서산간지역 포함 5000만 인구에 로켓배송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현대차와 LG가 미래 먹거리 발굴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도합 168조 원에 달하는 대대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쿠팡의 3조 원 투자 배경에는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최근 알리 등 차이나 커머스의 국내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국내 유통시장에는 적신호가 켜졌다. 중국 내수 시장이 침체되자 중국 이커머스들은 고물가에 시달린 한국 소비자들을 상대로 자국에 남아도는 재고를 초저가에 물량 공세했고 천문학적인 광고비를 쏟아부어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다.

가격 경쟁에서 한참을 뒤처진 국내 제조사, 유통사들은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당장은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살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사실상 상품의 생산,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가 가치 등 대부분이 중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국내 유통 산업 자체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국내 소비자들의 주소, 연락처 등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알리는 저가 공산품에서 전방위로 판매 품목을 늘리기 시작했고 유일한 약점인 배송 시간 단축을 위해 한국에 물류센터를 짓는 등 현지화를 시도 중이다. 쿠팡이 3조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 2주 전, 알리는 한국시장에 약 1조 5000억 원을 투자한다는 내용을 담은 투자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했고 국내 시장에서 월간활성이용자수(MAU) 818만 명으로 쿠팡을 무섭게 추격하고 있다.

국내 토종 기업들이 알리의 자금력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 뉴욕과 홍콩 증시에 상장한 알리의 시가총액은 485조 원, 보유한 현금만 약 100조 원에 달한다. 쿠팡의 10배가 넘는 수치다. 전 세계 240개 국에 진출한 알리는 지난해 영업이익만 23조 원으로 쿠팡(6174억 원)의 38배 이상이다.

쿠팡이 10년간 6조 원의 누적 손실을 내는 동안 알리는 150조 원을 벌었다. 한국 시장을 장악하는 데에 1조 5000억 원에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쿠팡 등 국내 기업이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알리에 대항해 국내 시장에서의 입지를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뒤늦게 위기를 감지한 정부가 대책을 준비 중이나 묘수가 없는 상황에서 쿠팡이 스스로 생존 싸움에 나선 것이다.

쿠팡은 이번 투자를 통해 지방 소멸이 우려되는 지역까지 물류 인프라와 배송망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로켓배송 권역이 전국으로 확대되어 소비자들의 편의가 향상될 것이며 국내 온라인 쇼핑산업의 취업유발계수가 10억 원당 약 16명 수준으로 4만 8000여 개의 일자리도 생길 것이다.

국가 경제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 뒤로 알리의 공세에서 살아남겠다는 쿠팡의 절박함이 보인다. 이미 물류망 구축에 6조 원을 투자해 오랜 적자에서 이제 막 첫 연간 흑자의 맛을 본 쿠팡이 또다시 3조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쿠팡에게는 생존의 문제고, 국내 시장을 중국 유통 공룡에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다. 이게 쿠팡의 투자 금액이 현대차의 20분의 1도 채 안 되는 금액임에도 더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다. 쿠팡의 3조 원 투자는 현금만 100조, 시총이 500조 원에 달하는 알리에 맞선 생존 전략이란 점에서 '100조 원' 그 이상의 투자에 가깝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daejong68@sejong.ac.kr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김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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