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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밀레니얼과 Z사이] 가장 개인적인 것 / 권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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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권도연 ㅣ 샌드박스네트워크 크리에이터 파트너십 매니저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흥미로운 실험 하나를 발견했다. 사법연수원 교수진이 교수법을 배우던 중 등장한 미니 테스트였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두 사람이 흰 종이를 한 장씩 손에 들고 서로 등을 맞댄다. 과제는 각자 종이를 어떻게 변형시킬지를 말로만 설명해 결국엔 같은 모양을 만들도록 하는 것. 상대방의 행동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종이를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접을지, 어느 부분을 가위로 자를지 오로지 말로만 전달해야 했다.

정해진 시간이 지난 뒤 두 사람은 등을 떼고 서로 종이를 비교해보았는데, 두 모양이 비슷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똑같이 네모 모양을 접은 것 같아 보여도 크기나 방식이 제각기 달랐다. 분명 서로 동그라미 모양으로 자르자고 한 것 같은데 한 사람은 가운데를, 한 사람은 구석을 잘랐다. 까다롭고 험난한 재판과 수사도 척척 해내던 분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실험의 메시지는 하나였다. 자신의 머릿속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소통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라는 것이다.

비단 위와 같은 실험에서만 느끼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늘 자기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는 일에 도전의식을 가진다. 굳이 단계를 나눠보자면 이렇다. 첫째, 우선 어떤 사안에 대해 나만의 생각을 떠올린다. 둘째, 그 생각이 남에게 전달하기에 적절한지 고민한다. 생각을 전하기로 결심했다면, 마지막으로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지를 또 한 번 생각한다. 여기까지의 절차도 어렵지만, 사실 그럼에도 전달 결과의 성공 확률은 짐작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점점 더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일에 소극적이게 되는 듯하다.

창의나 창발 같은 크리에이티브는 고민의 단계에서 발생한다. 정확히는 의미전달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고민 속에서 생겨난다. 남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은 본능적인 사회적 욕구는 인간의 창의적 감각을 모두 동원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생각이 도무지 뭔지 모르고 끝나게 되는 일을 막기 위해 더욱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중요할까, 남에게 더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할까 같은 부분도 끊임없이 고민의 영역을 침범해 온다. 내 머릿속 생각의 일관성과 다양성이 동시에 필요한 작업이다. 결국 모든 크리에이티브는 지독히도 어렵다.

여러 플랫폼의 등장으로 크리에이티브의 벽은 낮아졌다. 어린 학생부터 중장년층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크리에이티브를 더 쉽게 고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많은 사람들이 제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는 일뿐만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공감과 사랑을 받는 일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크게 특별하거나 다른 사람들은 아니다. 모두 창의적 상상을 위한 고민을 즐기고, 좋아하며 스스로 더 고민하고 있다. 과거에는 프로듀서가 방송국에서 전달자의 역할을 하고 시청자는 브라운관 너머에 있는 역할 분담이었다면, 이제 전달자와 수용자의 경계 또한 완전히 흐려졌다.

요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입 밖에 내본다는 ‘나도 유튜브 해볼까?’라는 질문에 ‘일단, 무조건, 그냥, 해보라’고 답한다. 더는 소극적일 이유가 없다. 직업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나 스스로의 크리에이티브를 고민하는 일보다 더 흥미로운 일은 없다. 트렌드에 대한 기민함보다 스스로에 대한 애정,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청중에 대한 존중만이 가장 최우선의 가치인 공간이다. 크리에이터는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해 만들어가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최근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밝힌 수상소감 중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어록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가 큰 주목을 받았다. 명감독에 대한 존경과 함께, 철저하게 개인의 시각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 가장 창의성을 인정받고 전세계에 메시지를 심어주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개인의 생각과 가치를 나누는 일에 겁내지 말고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한국만의 뚜렷한 색깔로 세계 무대에서 최고 영예를 성취하였듯 말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어쩌면 삶은 달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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