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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목요일 아침에]전경련 보듬을 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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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훈 논설위원

정경유착 과오에 반성 필요하지만

60년 쌓아온 네트워크·노하우 등

자산 사장시키는 건 현명치 못해

비상경제시국 상황서 역할 맡겨야

서울경제


얼마 전 재계 관계자를 만났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였던 자유기업원에 관한 내용이었다. 현 정부 들어 전경련이 적폐로 낙인찍히면서 그 여파는 자유기업원까지 고스란히 덮쳤다. 정부 출범 후 하루가 멀다 하고 취재를 핑계로 들이닥치는 소위 진보 매체에 시달리다 사무실을 여의도에서 강서구로 옮겼는데 거기까지 쫓아와 다그쳤다고 한다. 전경련에서 독립해 자체 살림을 꾸리고 한동안 자유경제원으로 간판을 바꿨는데도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직원들은 마치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은 것 같았다고 한다. 산하기관이 이 정도였으니 적폐의 본산으로 지목된 전경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최순실 사태’에 연루되면서 적폐로 몰려 해체위기까지 몰렸다. 과거와 단절하겠다는 혁신안도 발표하고 정경유착 창구라는 눈총을 받던 사회공헌 업무는 아예 없앴다. 그렇게 3년이 돼가는데도 여전히 찬밥 신세다. 재계와 정부의 소통에서 완전히 소외돼 대통령 행사 초청 명단에 전경련은 없다.

일본의 수출규제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7월10일. 청와대가 대책을 논의하겠다며 대기업 30곳과 경제단체 4곳을 초청하면서 전경련은 제외했다. 허창수 회장이 참석했지만 GS 총수 자격이었다. 일본에 맞설 대응방안을 마련해보자면서 정작 일본 재계와 탄탄한 대화채널을 가진 ‘일본통’ 전경련은 배제한 것이다. 그해 10월2일 경제단체장들과의 청와대 오찬 간담회 역시도 그랬다.

‘전경련 패싱’은 올해도 진행형이다. 이달 13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서도 전경련만 쏙 빠졌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 적이 있기는 하다. 지난해 3월 허 회장이 청와대에서 열린 필리프 벨기에 국왕 국빈 만찬에 전경련 회장 자격으로 초청됐다. 전경련을 대하는 정부 태도가 바뀌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역시나’였다. 바로 다음 날 청와대가 “전경련과 소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일축했다.

6개월 후인 9월 말에는 여당 의원들이 현안 논의를 위해 여의도 전경련을 직접 찾아갔다. 현 정부 출범 후 처음이었다. 행사 이름도 ‘민주당의원, 귀를 열다’여서 전경련이 해금되는 것이 아니냐는 희망 섞인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원욱 원내수석부대표는 “어려움에 빠진 한국 경제에 대한 지혜를 모아볼 방안을 고민한 끝에 기업이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예정시간을 넘겨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그게 다였다.

노동계가 발끈하자 다음 날 민주당은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꼬리를 내렸다. 의원들이 개별적인 차원에서 전경련이 아닌 기업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라며 의미를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노동계에는 정식 사과까지 했다. 이런 분위기는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보다 더하다. 당시에도 전경련 비토는 있었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산업부 등은 물밑 채널을 가동하며 정책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청와대·정부·여당 할 것 없이 노동계 눈치 보느라 전경련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정책이 나와도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많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 이유가 다 있다. 물론 전경련도 정경유착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잘못을 반성하고 변해야 한다. 하지만 60년 동안 재계를 대표하면서 쌓아온 경제현안 소통창구 역할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사장시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풍부한 국제교류 경험과 연구활동은 다른 경제단체와 비교되지 않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것도 지금처럼 안팎으로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파고가 몰려오는 ‘비상경제 시국’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일본의 수출보복 조짐을 먼저 감지하고 경고음을 낸 것도 전경련이 그간 축적해온 해외 네트워크 덕분이었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모두가 동참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누구는 안 된다는 식으로는 시의적절한 대응이 힘들 수 있다. 변신 약속이 미진하면 채찍질을 가하더라도 전경련을 보듬을 때가 됐다.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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