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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이상훈의 터무니찾기] 국회의원, 지역민 대표인가 국민 대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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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총선 공천과 지역구 획정의 계절인 요즘 불현듯 떠오른 한 가지 질문. 국회의원은 국민 대표인가 지역민 대표인가?

찾아봤다. 헌법 46조 2항.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국회법 24조엔 의원이 국회에서 해야 하는 선서 내용이 담겼다.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국회의원은 분명 국민 전체를 위해 일하는 국민 대표다.

공직선거법도 뒤져봤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당해 의원 선거구를 단위로 하여 선거한다.'(20조 2항) 결국 선출의 편의를 위해 선거구, 즉 지역구를 둔 것이지 국회의원은 지역민이 아닌 국민 전체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거다. 전국 단위로 뽑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따로 규정된 것까지 감안하면 국회의원이 국민 대표임은 더욱 명확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예산심사 때면 지역구로 가는 예산 챙기기에 의원들은 바쁘다. 읍소를 담은 쪽지가 은밀하게 전달되기도 한다. 그 이후엔 '내가 따냈습니다'라고 홍보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때론 인접한 지역구 의원들끼리 뭉쳐서 정부를 압박한다. 동네에 무엇을 해달라거나 무엇을 하지 말아달라고 목소리를 키우는 거다.

의원의 일과 중 상당수는 지역구 일이다. 주민들의 민원을 듣고, 지역구 행사에 가느라 국회의원의 기본 업무인 상임위원회에 참석하지 못하기도 한다. 과외를 받느라고 학교 수업을 빠지는 셈이다. 그러니 지역구 의원들 사이에서는 "동네 일 안하는 비례대표 의원은 얼마나 편하냐"는 말까지 나온다.

이러니 시장·군수, 지방의회 의원이 하는 일과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뭐가 다른지 헷갈릴 지경이다. 혹자는 말한다. 국회의원은 중앙정부를 상대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니까 그렇다고. 그렇다면 국회의원은 지역구의 민원 창구라는 말인가.

한참 전 인기를 끌던 만화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일본 정치권의 민낯을 그린 '정치9단'(원제 '가지 류스케의 뜻')이다.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소신을 가진 주인공이 유세에서 말한다. "출신 지역만의 이익을 위해 억지 법안을 주장하는 게 국회의원이 할 일은 아니다." "지역구의 이익보다는 국익을 생각하겠다."

지역구 일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우면 이런 가상의 주인공까지 등장했을까. 의원들도 고민이다. 지역구는 현실이고 국가 전체는 이상이라는 고민이다. 정당마다 지역을 넘어서는 전국 정당이 '꿈'인 게 현실이다.

언론에서 지역구 예산 많이 챙긴 의원에 관한 비판적인 기사를 쓰면, 오히려 고맙다고 할 판이다. 지역을 위해 일했다고 홍보가 된다는 거다. 의원만 탓해봐야 소용이 없다. 유권자의 생각이 바뀌어야 할 거다. 지역 일에만 힘쓰는 의원을 평가하는 풍토 말이다. 그러나 풍토가 달라지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렇다면 제도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지역성을 묽게 만드는 제도 말이다. 넓은 지역에서 여러 명을 뽑아 지역성이 희석되는 중대선거구, 전국 단위로 뽑는 비례대표 확대 등이다. 그런 측면에서 얼마 전 개정된 공직선거법은 아쉽다. 5월에 들어서는 21대 국회에선 뭔가 달라지려나.

[이상훈 정치부 차장·레이더P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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