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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시민편집인의 눈] 검찰개혁, 그 이후 / 홍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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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홍성수 ㅣ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이 통과되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은 그동안 검찰에 과도하게 쏠려 있던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것이었다. 전자는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이고, 후자는 검찰 권한의 일부를 경찰에게 넘기는 것이다. 검찰과 경찰의 권한을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에 대한 세계적인 표준은 없다. 개별 국가의 여건에 맞는 최적치를 찾아 적절한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대원칙이 있을 뿐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수사하는 기관'과 ‘수사를 종결하는 기관'은 분리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보는 편이라, 그런 점에서 수사종결권을 경찰에 넘기는 식의 권한 분배가 적절한지는 여전히 의구심이 있다.

그동안 검찰 권력 남용 문제는 주로 부패 범죄나 경제 범죄에 대한 수사에서 발생했는데, 이 부분에 손을 대지 않은 채 검찰의 직접수사를 계속 인정한 것도 불만스러운 대목이다. 하지만 어차피 정답이 없는 문제라면 새로 바뀐 이 틀에서 세부사항을 조율해나가는 편이 현실적이다. 이제부터 경찰과 검찰의 줄다리기가 새로 시작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검찰개혁의 성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논의 과정이 왜곡되지 않도록 끈질기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제 경찰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자치경찰제, 수사경찰 분리, 정보경찰 폐지·축소, 독립적 경찰감시기구 설치, 경찰위원회 강화, 감찰 강화 등 해묵은 과제가 있다. 대부분은 검찰개혁과 한 묶음으로 추진되어왔던 것이고, 경찰개혁이 뒤따라야 수사권을 둘러싼 개혁이 마무리되는 것이다. 사실 경찰 과제에는 공수처 도입이나 수사권 조정보다 더 복잡한 논점이 수두룩하다. 자치경찰제가 개혁의 근간을 이루게 될 텐데, 수백 개에 달하는 중앙경찰의 권한 중 무엇을 자치경찰에 넘길 것인지 정하는 것부터가 골치 아픈 문제다. 경찰 내부에서 수사경찰을 분리해서 독립성을 부여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고, 이번 정부 들어 역할이 커진 정보경찰을 단번에 정리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경찰개혁위원회가 권고했던 독립적인 경찰감시기구 설치는 영국 잉글랜드·웨일스의 ‘독립경찰조사기구’(IOPC)를 모델로 하고 있는데, 이 기구는 연간 예산이 약 1천억원이고 직원이 1천여명이며 매년 3만건이 넘는 진정을 처리한다. 잉글랜드·웨일스 인구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인데,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보다 훨씬 더 큰 기구가 오로지 경찰만 감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강력한 경찰감시기구를 설치할 수 있을까? 권고 당시에도 경찰 내부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 여당의 이인영 원내대표, 홍익표 수석대변인,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경찰개혁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경찰개혁은 결국 국회의 입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국회만 쳐다보면서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경찰 스스로의 개혁 의지가 중요하다. 수사종결권은 실로 엄청난 권한이다. 그동안 검찰을 불신했던 것도 결국 사건을 덮거나 봐줄 수 있는 권한이 검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경찰이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당장 경찰에 힘을 써줄 수 있는 전직 경찰관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검찰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었던 전관예우 문제가 경찰로 넘어간다는 얘기다.

검찰이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던 과제를 경찰이 해내야 한다. 전관예우가 작동할 수 있는 모든 길목을 철저히 차단하고 피의자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입법 없이도 할 수 있는 조치가 결코 적지 않다. 경찰 스스로 철두철미하게 대처하여 ‘경찰이 하니까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나는 우리 경찰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역량과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믿는다.

쉽지 않아 보였던 검찰개혁이 가능했던 것은 시민들의 뜨거운 열망에 정치권이 화답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경찰개혁은 아직 국민적 관심사도 아니고, 세부적인 내용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의 역할 중 하나가 간과되기 쉬운 의제를 부각해 여론을 주도해나가는 것이라면, 경찰개혁이야말로 언론이 제시해야 할 새로운 화두가 되어야 한다. 검경 개혁은 이제 겨우 첫발을 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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