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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NGO 발언대]오염된 미군기지, 트럼프가 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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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으로 땅을 빌려주면서 집을 지어주고 용돈과 차비도 줬는데, 묵은 기름때와 독극물, 소각장은 그대로 두고 떠난다. 주인은 남은 쓰레기와 시설을 자기 돈으로 직접 치운다. 심지어 원래 살던 식구들을 쫓아내면서 여의도 5.5배 면적의 집을 지어주고 이사비 16조원도 기꺼이 지불했다. 미국이 한국에 군대를 주둔한 지난 75년 동안, 한국 정부는 단 한 차례도 미국에 오염된 미군기지 정화 책임과 비용을 받아낸 적이 없다. 미국은 ‘한국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경향신문

누구나 알고 있는, 환경정책의 기본원칙인 ‘오염자부담원칙’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내 토양환경보전법은 “그 오염을 발생시킨 자는 그 피해를 배상하고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한다”(제10조의3)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주 한국 정부는 고농도 토양오염이 발생했던 원주 캠프 이글과 캠프 롱, 부평 캠프 마켓, 동두천 캠프 호비 쉐아사격장 등 4개 폐쇄 미군기지를 즉시 반환받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미측과의 이견’으로 정화 주체와 비용은 ‘오염을 발생시킨 자’가 아니라 한국이 지겠다고 했다. 미국은 2006년 오염된 23개 미군기지 반환 때도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원상 복구 의무가 없다’(제4조 1항)는 규정을 근거로 버텼다. 이번 협상 때도 캠프 마켓에서 기준치 10배 이상의 다이옥신이 발견되었지만, 미국은 SOFA에서 유일한 환경기준인 ‘주한미군에 의해 야기된 인간 건강에 대한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KISE)’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강경화 장관의 외교부는 이번에도 오염자부담원칙을 따지지 못했다.

닥쳐올 용산기지 반환 협상은 태풍의 핵이 될 것이다. 주한 미군기지 중 환경오염 사고가 가장 빈번하고 폭넓고 고농도로 발생한 곳이 바로 용산기지다. 지난 25년 동안 밝혀진 오염사고만 90건이 넘고, ‘주한미군 환경관리기준’으로 ‘최악의’ 유출량 3.38t 이상 7건, ‘심각한’ 유출량 400ℓ 이상 32건이 포함되었다. 오염 사실을 한국 정부와 서울시, 용산구에 알리지도 않았다. 2018년 서울시 ‘용산미군기지 주변 유류오염 지하수 정화현황’을 보면 녹사평역 지점은 1급 발암물질인 벤질의 농도가 지하수 정화기준의 1170.5배에 달했다. 삼각지역 인근 지역은 석유계총탄화수소가 기준치의 292.8배나 됐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매년 이곳의 오염된 지하수를 국민 세금으로 치우고 있다. 왜냐하면, 미국의 반대로 용산기지 내부 오염원을 근본적으로 정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정컨대 용산기지 오염정화 비용은 1조원을 넘을 것이다.

미군기지 반환 협상의 ‘선(先) 조건’은 미국에 오염정화의 책임과 비용을 분명히 따지는 일이다. 주한미군이 일으킨 오염사고 기록 전체에 대한 전모를 상세히 밝혀야 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오염자부담원칙을 관철시켜야 한다. 한국 정부는 국민의 자주적 권리, 건강권과 알 권리를 마땅히 주장하며 반환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 국무총리실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를 반환 협상의 컨트롤타워로 세우고 행정부처, SOFA 관련 법률 및 환경오염 전문가, 시민단체를 모아 명실상부한 한국의 협상팀을 구성해야 한다. 환경부와 서울시는 오염기지 대응반을 구성해 협상을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제는, 직접 나서야 한다. 서울시민이 용산기지의 토양, 지하수 오염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국내법에 근거해 주한미군에게 지금 당장, 오염정화 명령을 내려야 한다.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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