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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시선]다나카 쇼조의 참된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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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한 날에 경향신문 1면은 사람들의 이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산업재해로 돌아가신 1200명의 이름. 세월호의 이름들 다음으로, 이름 하나하나를 읽게 만든 지면이었다. 종이 신문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지면이라고들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이런 일이 아니고서는 이제 종이 신문을 보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빠르게 바뀌어 가는 것이 종이 신문뿐일 리 없지만, 거기에 빼곡하게 들어찬 이름들은 정작 바뀌어야만 했을 어떤 것이 바뀌지 못했다는 걸 목숨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경향신문

얼마 전 다나카 쇼조라는 인물에 관한 책을 펴냈다. “참된 문명은 산을 황폐하게 하지 않고, 강을 더럽히지 않고, 마을을 부수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아니한다.” 20세기 초 메이지 시대 사람이었던 그가 한 말이다. 그는 산업사회로 치달았던 일본, 첫 번째 대규모 환경오염 사건이었던 아시오 광산 광독 사건에 맞섰다. 김종철 선생은 “다나카 쇼조야말로 동아시아에서 서구 근대 문명의 본질을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간파한 혜안의 소유자였다”라고 했다. 일본의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는 지난해 서울에서 전시를 열었는데, 그 전시장 한 벽면에도 다나카 쇼조의 이 말이 있었다. 일본에서는 시민운동의 아버지이자, 평화헌법(헌법9조)의 선각자, 시민 불복종 운동과 환경운동의 맨 처음으로, 그리고 NHK는 다나카 쇼조가 아시오 광독 사건을 마주한 “그때, 역사가 움직였다”라고 평가했던 인물. 참된 문명의 길을 찾았던 그는 당시 일본 지식인 가운데 유일하게 동학혁명이야말로 문명적이라며, 전봉준을 높이 기리기도 했다.

바다 건너 들려오는 후쿠시마의 소식은 그것이 어떤 사고였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던 만큼이나, 사고를 수습하는 모양새마저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 사고의 피해를 희석시키고, 아무 일도 아니었다라고 강변하고, 피해자들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려는 듯한 정부의 자세. 그건, 최초의 대규모 환경오염 사건이었던 아시오 광독 사건을 대하는 메이지 정부의 자세를 그대로 빼다 박은 모양새였다. 아시오 구리 광산에서 나온 광독은 그 일대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드넓은 땅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죽은 땅이 되었다. 2011년 3·11 대지진 때에도 가두어 두었던 광독이 흘러넘쳐서 다시 주변을 오염시켰다. 지금까지도 그저 덮어두고만 있는 죽음의 사건인 것이다. 이런 사건을 두고 국가는 기업 편만을 들며, 민중의 삶을 모른 척 짓밟았다. 수많은 이들의 피해와 고통, 절규와 눈물은 “돈다발로 뺨을 후려치”며 덮었다. 그렇게 아시오 광독 사건을 덮었던 정부는 지금껏 이어져, 전쟁과 식민 지배의 범죄를 부인하고, 미나마타를, 후쿠시마의 실상을 덮고 있다. 아베 정부는 충실히 전통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책을 쓴 고마쓰 히로시는 일본이 “분에 맞는 소국이라면 족하다. 올림픽 메달 수를 다투지 않아도 좋다. 경제 대국이라고 찬사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다른 나라를 방해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 폐를 끼치지 않는, 그런 깊고 그윽한 몸가짐의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고 적었다.

정치는 언제나, 새 집을 짓는 일이 아니고, 헌 집을 고치는 일이이서, 새로 집주인이 바뀌어도 집 안 모든 곳을 금세 제 뜻대로 고칠 수는 없다. 게다가 한뜻으로 충분히 오랫동안 일을 하기도 쉽지 않다. 촛불로 바뀐 우리 정부는 여전히 낡은 집을 뜯어고쳐 가며 나아가고 있지만, 1200명의 이름은 그래서, 아직도 지금까지 남아 있고, 새겨야 할 이름들이다. 산과 강을 더럽히지 않고, 마을을 부수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만큼 중한 일이 있을 리가. 그것이야말로 맨 앞에 두어야겠지. 다나카 쇼조는 마지막까지 늙은 몸을 이끌고 아시오 광독 사건의 피해자 마을에서 싸웠다. 그가 싸웠기에 아시오 광독 사건은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았고, 100년이 지난 지금, 다시 기억되고 있다. 의로운 패배는 힘이 있다.

전광진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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