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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왜냐면] 툰베리에게, 우리도 할 말이 있다 / 서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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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열

지혜학교 교사·농사상연구소 소장

나는 십대를 만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그것도 그들에게 대안적 삶을 모색하자고 목청껏 외치는 대안학교 교사다. 정작 나는 ‘대안’이 되지 못하면서 말이다. 요즘 우리 시대의 대안으로 나타난 십대가 있다. 다들 짐작하듯이 스웨덴의 십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다.

툰베리는 매주 금요일 스톡홀름 의회 앞에서 기후변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녀의 시위는 유럽 청소년들의 기후행동을 촉발했다. 툰베리는 2018년 <타임>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청소년’으로 선정됐고, 최연소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나는 내가 만나는 십대들에게 툰베리를 소개하며, 그녀가 유럽의회에서 한 연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툰베리는 멸종되는 생명들을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는 툰베리의 생태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나는 학생들이 이 대목에서 공감을 가지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십대 소녀를 학생들에게 소개했는데, 그 친구는 내가 있는 곳 근처에 위치한 운남고등학교를 다니는 이민정 학생이다. 나는 이 친구와 일면식이 없다. 그녀의 이름을 아침 라디오 인터뷰에서 들었다. 이민정 학생은 광주시교육청에 속해 있는 전체 고등학생 모임의 의장이다. 그녀가 시사 프로그램에 나오게 된 까닭은 일본제품 불매운동 때문이었는데, 광주지역 학생들의 일본제품 불매운동 선언식과 일본 학용품 버리기 행동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 지역 학생들이 진행하는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그레타 툰베리의 환경운동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우리의 삶은 그렇게 따로따로 나누어서 이해할 수 없다. 삶을 통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현실을 변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요즘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우리의 독립운동을 단순히 일본에 대한 저항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일본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팽창으로 귀결된 것이고, 일본이 우리에게 제일 먼저 요구한 것은 다름 아닌 통상(무역)이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를 수 있겠으나, 그때부터 자본주의적 삶, 상품으로 살아가는 도시적 삶이 시작된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우리(조선) 마을의 삶, 농(農)적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이는 농민(인간)뿐만 아니라 땅(자연)도 고통을 받게 했다. 더욱이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서 그때의 고통이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세계의 절반이 기아로 굶주리는데, 대부분이 땅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농민이고 그들은 농촌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지난 9월23일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때 툰베리의 연설에서 “(오늘날 북반구 도시에서 사는 나와 같은)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전부 돈과 끝없는 경제 성장의 신화에 대한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녀는 ‘끝없는 경제 성장’이 인간과 자연을 고통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불매운동도 단순히 우리의 경제를 위한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세계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자유)무역은 지구(땅)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이 체제 속에 남반구의 십대들, 아동들은 얼마나 기아로 죽어가고 있는가. 좀 더 큰 맥락에서 우리의 입장과 태도를 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 학교에는 중학생들이 농사를 짓는 동아리가 있다. 이름하여 ‘농사를 사랑하는 모임’, ‘농사모’다. 나는 농사모 친구들에게 우리도 툰베리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지구환경을 지키는 가장 우선적인 일은 땅(지구)을 살리는 농사에 있다. 그리고 지구촌에서 가장 고통받고 있는 이들은 농민이다. 이들과 연대하며 땅의 영성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입장에서 불매운동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도 새롭게 보아야 할 것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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