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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일장기에 그린 ‘진관사 태극기’의 숙연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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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불교의 수호자들’ 특별전

동국대 박물관서 실물 첫 선

임정 기관지 독립신문 30호 등

항일운동 유산들 숙연한 감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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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한산 서쪽 자락 진관동 계곡에 있는 진관사는 고려 현종 때 처음 절터를 닦은 이래로 1000년 역사를 꾸준히 이어온 고찰이다. 이 유서깊은 절은 2009년 5월26일 뜻밖의 ‘큰 발견’으로 가람의 역사를 다시 새롭게 쓰게 된다.

칠성신령을 봉안한 기도 장소인 경내 칠성각을 100년 만에 수리하려고 인부를 시켜 벽체를 뜯은 것이 단초가 됐다. 건물 안의 불단과 기둥 사이 공간에서 일장기에 덧칠해 만든 낡은 태극기가 불쑥 나왔다. 인부들의 급보를 듣고 달려온 승려들이 살펴보니 태극기는 천 꾸러미 모양새로 접혀 있었다. 그 안에서는 처음 보는 항일 지하신문 인쇄물 뭉치들이 쏟아져 나왔다. 1919년 3·1운동 직후부터 이듬해까지 서울의 독립운동 조직과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간행한 <신대한>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 <독립신문> 등이었다. 대부분 실물이 처음 확인되는 것들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학계와 불교계가 후속 조사를 벌인 결과 이 태극기는 일제강점기 진관사에서 수행하면서 임시정부와 연락망을 만들어 한용운, 백용성 같은 불교계 항일인사 등의 활동을 지원했던 백초월(1878~1944) 선사가 3·1 독립운동 당시 쓴 것이란 추정이 나왔다. 그가 일제 당국에 연행될 당시 절의 다른 승려들이 항일신문 등의 인쇄물을 싸서 숨겨놨던 것으로 보인다. 진관사가 불교계 항일운동의 거점이었고, 백초월이 그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지난 15일부터 서울 장충동 동국대 박물관 2층에 차려진 특별전 ‘근대 불교의 수호자들’(12월13일까지)에서 이런 내력을 지닌 진관사 태극기 실물과 그 안에 싸여 있던 <조선독립신문> 42호와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30호를 함께 볼 수 있다. 2010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진관사 태극기는 동국대박물관에서는 처음 전시된다. 들머리에 바로 내걸려 관객을 맞는 태극기는 왼쪽 윗부분이 일부 불탔으며 곳곳에 해지고 구멍 난 자국이 보여 숙연한 감회를 자아낸다.

전시장에는 이외에도 한용운의 염주와 백초월 선사의 묵죽도를 비롯해 ‘하루라도 독서를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는 명구를 적은 안중근 의사의 유묵 소장품, 일본군의 전투 장면과 근대 문물 등을 그려 넣은 근대 불교 회화의 주요 작품인 흥천사 소장 <감로도> 등 90여점의 유물이 나와 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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