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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하루 20시간 노예 노동, 소장 갑질에 성희롱까지…‘시설관리119’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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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관리 노동자는 ‘을 중의 을’

직장갑질 119, 22일 시설관리119 출범

2017년 출범 이후 9번째 온라인 모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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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저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경비원입니다. 이 아파트에는 몇 개의 동이 있지만, 휴게실은 한 동에만 있습니다. 그런데 그 휴게공간이라는 곳도 자재와 공구, 쓰레기 등이 쌓여 있고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침대 하나만 놓여 있어 사실상 창고나 다름없습니다. 몇 번 쉬다가 힘들어서 다른 동 사무실 의자에 그냥 앉아서 쉽니다. 얼마 전에는 지하 저수조로 내려가다가 장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허리와 다리를 다쳤습니다. 병가를 내고 쉬었지만 휴가비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2.

▷ 저는 고시텔이 있는 건물 관리인입니다. 전기·엘리베이터·수도·보일러 등을 관리합니다. 전기밥통에 밥이 있는지, 인덕션은 작동하는지 확인해야 하고, 주방 청소를 합니다. 각종 민원에도 시달립니다. 거주자들은 새벽에도 “티브이가 안 나와요” “옆방이 시끄러워요” “인터넷이 안 됩니다” “술 취한 사람이 고성방가를 해요” 등과 같은 호소를 해옵니다. 이 때문에 새벽에도 무조건 사무실에서 자야 합니다. 지난 9개월 동안 고시텔에서 숙식하면서 아침 7시에 일어나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하루 20시간 가까이 일을 했습니다. 오전에 각종 일을 하고 나면 첫 끼니는 오후 3~4시가 돼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장은 휴게시간을 주지도 않고, 쉬는 날도 없이 일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한달 꼬박 일해 받는 돈은 200만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아파트와 회사 등 건물을 관리하고 청소하는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얘기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이렇게 경비원과 환경미화원 등 시설을 관리하는 노동자들이 당한 갑질 사례를 제보받는 온라인 모임 ‘시설관리119’를 출범했다고 22일 밝혔다.

시설관리119는 2017년 11월 출범한 온라인 모임 1호인 ‘노동존중 한림성심병원모임’ 이후 출범한 병원 간호사 모임, 보육교사 모임, 방송계갑질119, 반월시화공단 노동권리모임, 대학원생119, 콜센터119, 사회복지119 등에 이어 9번째 온라인 모임이다. 직장갑질119는 직장 유형별로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는 갑질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유형별로 접수 사례가 많은 모임을 따로 묶어서 갑질 사례를 수집해 고발하고 대응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특정 유형에서 갑질 제보 건수가 늘어 집단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 온라인 모임을 출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건물주, 관리소장, 용역업체 사장, 아파트 주민 등으로부터 갑질에 시달리는 ‘을 중의 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직장갑질119는 “정해진 시간보다 5분 일찍 샤워했다고 시말서를 쓰게 하는 사장” “여성 화장실 문을 허락 없이 여는 관리소장” “‘지하실로 끌고 가서 패버리겠다’고 폭언하는 관리자” 등 시설관리 노동자들이 당한 다양한 갑질 피해 사례를 공개했다.

특히 열악한 노동환경은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공통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시설관리 노동자 ㄱ씨는 일하던 중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쳤는데 관리소장이 반차를 쓰지도 못하게 하고, 소장이 허락해야만 병원에 갈 수 있게 해준다고 직장갑질119에 제보했다. ㄱ씨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다른 직원들과 식사를 같이 하지 못하고, 인사를 해도 무시를 당하는 등 일상적인 갑질이 지속돼 최근 수면제를 복용해야만 잘 수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ㄴ씨는 정해진 휴게시간에 민원전화를 안 받았다는 이유로 관리소장으로부터 “휴게시간에 전화를 안 받으면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어떻게 돌아가겠냐. 앞으로 정시보다 10분 일찍 출근해 10분 일찍 퇴근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시설관리 노동자들이 갑질 피해 사실을 알려도 돌아오는 건 ‘보복 갑질’뿐이다. 청소노동자 ㄷ씨는 동료 직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해 경찰에 고소했는데, 사장은 오히려 ㄷ씨에게 사직을 강요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일을 적게 주는 등 보복 갑질을 했다. 시설관리 노동자가 건물주 등 원청 사용자로부터 갑질을 당해 문제를 제기해도 하청회사의 책임으로 떠넘기면서 갑질을 반복하게 만들어 괴롭다고 호소하는 사례도 있었다.

직장갑질119는 지난달 16일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통해 갑질 신고와 조처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박 위원은 “아파트 경비원 등 하청 노동자가 원청 회사로부터 갑질을 당하면 하청회사가 아닌 원청 사용자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며 “이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따라 원청회사는 피해 사실을 조사하고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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