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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세상읽기] 복지 증세는 못 하더라도 이것만은 / 우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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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치인들은 대규모 재정지출을 약속한다. 현금성 복지지출, 도로나 철도 같은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이 대표적이다. 유권자들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재원 대책 중 대표적인 것이 비과세·감면의 축소다. 원래는 세금을 내야 하는데 여러 정책적 이유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있다. 이 가운데 더 이상 세 부담을 덜어줄 이유가 없거나 정책 효과가 낮은 부분을 줄여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세금을 걷을 때는 원래 걷힐 것으로 기대되는 세수 규모가 있다. 세법은 계획한 세수를 걷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다. 하지만 이후 다양한 이유로 세금을 줄여주는 조세특례가 도입된다. 이익단체나 협회들이 이를 관철하기 위해 국회의원, 정부 관계자 등에게 로비를 하는 경우도 있다. 결과적으로 계획했던 것보다 작은 규모의 세수가 걷힌다. 두 세수의 차이를 조세지출이라고 부른다. 현대 재정학에서는 조세지출을 재정지출과 동일하게 바라보고 있다. 조세지출은 수혜 대상에게 현금으로 보조금을 지급한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국가재정법 16조는 예산의 원칙을 규정하면서 정부가 재정을 운용함에 있어 재정지출과 더불어 조세지출의 성과를 제고하도록 하고 있다. 심층평가를 통해 조세지출의 효과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항목을 폐지하거나 조정하도록 돼 있다. 같은 법 34조에 따르면 정부는 조세지출예산서를 예산안의 첨부서류 중 하나로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예산으로 표현되는 재정지출뿐만 아니라 조세지출 규모도 같이 고려해야 제대로 정부의 지출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올해 2019년 예산을 기준으로 보면 재정지출액은 약 470조원 정도이지만, 여기에 조세지출 47조원을 더하면 총 재정지출은 517조원을 이미 넘어섰다.

조세지출 규모가 커지면 세수는 줄어든다. 하지만 조세지출의 혜택은 기본적으로 세 부담이 있는 주체들만 받을 수 있어 효과는 제한적이다. 예컨대 근로소득세에서 소득공제를 늘려주면, 기존에도 세 부담이 없는 10명 중 4명의 근로자는 혜택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국가재정법은 조세지출의 한도를 미리 정해놓았다. 조세지출의 규모가 커지면 우리나라의 과세 기반이 취약해질 뿐만 아니라 과세 형평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재정법 88조는 당해 연도 국세수입 총액과 국세감면액 총액을 합한 금액에서 국세감면액 총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국세감면율로 정의한다. 예를 들어, 한해에 90조원의 국세수입이 있었고 10조원의 국세감면을 해주었다면 국세감면율은 10%가 된다. 국세감면율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던 2009년 15.9%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 2017년 13%를 기록했다. 국세감면율이 하락한 것은 국세감면이 줄어들어서는 아니고 국세수입이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국가재정법 시행령에는 국세감면율의 한도를 직전 3개년 국세감면율 평균에 0.5%포인트를 더한 것으로 정하고 있다. 올해 국세감면율의 법정한도는 13.8%다. 국세감면율은 13.7%이기 때문에 국세감면율 법정한도와 0.1%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국세감면율 법정한도에 바로 턱밑까지 온 것이다.

이유는 문재인 정부에서 조세지출을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이후 조세지출 규모는 평균 9.3%의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는 근로장려세제 및 자녀장려세제 등 사회복지 분야를 확대개편하여 조세지출이 크게 늘었다. 대상도 넓히고 지원액도 올렸다. 2017년 이전의 조세지출 평균 증가율이 5%보다 낮았던 점을 생각해보면 조세지출의 증가 속도는 빠른 편이다.

지난해 국세수입이 매우 양호했던 점을 고려하면 2020년 국세감면율 법정한도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세수입이 좋으면 국세감면율이 내려가기 때문에 직전 3개년 평균으로 정해지는 법정한도는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올해는 법정한도를 넘지 않겠지만 내년에는 장담하기 어렵다.

세수가 좋았던 시기는 지났다. 올해 세수 진도율도 좋지 않다. 지난 3일 경제활력을 보강한다는 명분으로 대기업이 혜택을 볼 수 있는 투자촉진을 위한 3종의 조세지출을 확대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국세감면율 법정한도가 위반 시 제재 조치가 없는 선언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가이드라인의 구실은 한다.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증세는 안 하더라도 최소한 이 정도는 준수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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