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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필동정담] 정치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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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만 해도 소위 '정치판사'들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법원에서 청와대 비서실과 사회정화위원회 등에 파견된 이들은 권력층의 지시에 따라 사법행정과 법관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파견이 끝나면 법원으로 복귀해 승승장구했다. 정치판사들의 전횡으로 사법부 독립 침해 우려가 커지자, 1988년 2월 300여 명의 소장판사들이 판사의 청와대 파견 중지, 김용철 대법원장 사퇴, 정보기관원의 법원 상주 폐지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제2차 사법 파동이었다. 이 사태로 현직 판사들의 청와대 파견이 중단됐다.

지난 17일 김영식 전 부장판사(52·사법연수원 30기)가 청와대 새 법무비서관에 발탁됐다. 광주지법·인천지법 부장판사를 거친 그는 올 2월 법복을 벗고 변호사가 된 지 석 달 만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김 전 부장판사는 김형연 전 법무비서관처럼 진보 성향 판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를 지냈다.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국정 현안과 정책에 대한 법률 판단을 하는 자리다. 법원 재판 등의 상황을 청와대에 전달하고 청와대 의중을 법원에 알리기도 한다. 판사 시절 "사법부가 청와대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했던 김 전 부장판사가 변호사로 '경력세탁'까지 하면서 청와대 참모로 변신하자, 일선 판사들은 "남이 하면 사법부 독립 침해고 내가 하면 정의냐"며 반발하고 있다. 사법부는 지금 대법원장을 비롯해 대법관, 헌재 재판관, 법원장 중 상당수가 우리법연구회나 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인권법연구회 출신인 김 전 부장판사를 낙점한 것은 "주류 세력을 교체한 것도 모자라 사법부를 장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소지가 크다.

법관이 재판보다 '출세'에만 궁리하는 정치판사로 전락하면 사법부 독립과 공정한 재판은 요원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인사청문회에서 김형연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사표를 낸 지 며칠 만에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임용된 데 대해 "법관이 사직하고 정치권이나 청와대로 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 법원조직법에 일정한 제한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선 청와대 눈치를 보는 탓인지 입을 다물고 있다. 이러고도 권력 외풍을 막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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