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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사설] 미·중 화웨이전쟁 `제2의 사드사태`로 번지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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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압박하고 있는 미국이 한국에도 '화웨이 보이콧'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매우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외교부는 "구체적 내용을 밝힐 수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미국 측이 여러 채널을 통해 화웨이 장비의 보안 문제를 거론하며 우리 측에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동맹국들에 화웨이 배제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으니 한국에 이처럼 요구하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정보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스(Five Eyes) 멤버 중 호주, 뉴질랜드 등은 발 빠르게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고,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인 ARM과 일본 이동통신사 KDDI 등이 동참하면서 반(反)화웨이 전선은 확대되고 있다.

화웨이 퇴출에 동참하는 국가가 늘어날수록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동맹의 가치를 내세우며 자기편에 서기를 요구할 것이고, 우리가 미국에 호응했다가는 중국이 반발할 게 뻔하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미·중 기술 패권 전쟁에 휘말리게 될 경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6년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한국이 사드 배치를 공식화하자 중국은 기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을 집중 공격한 데 이어 관광 금지 등 보복 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한국이 입은 피해액은 2017년 한 해에만 8조원이 넘을 정도였다.

미·중 화웨이 전쟁은 안보 이슈였던 사드 사태보다 우리 경제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현재 국내 기업 중 화웨이와 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 곳은 100개가 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콕 집은 LG유플러스의 5G 장비 거래 외에도 지하철 노후 통신망 개선, 금융기관 전산망 등에 화웨이 장비가 다수 들어가 있다. 또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화웨이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상당량 공급하고 있어 경제적 타격이 커질 수 있다.

정부가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만 계속 유보적 입장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놓일 수 있는 만큼 정부는 '기업 간 거래에 개입 불가' 등 원칙을 세워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외교적 수단을 총동원해 미·중 화웨이 전쟁이 '제2의 사드 사태'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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