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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만3세 유아에 `빨간` 식판…유치원 급식 이래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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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유치원 입학 전 유치원생도 초등학생들과 같은 급식을 먹는다는 설명은 들었지만, 막상 초등학교 식단을 눈으로 보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사진 제공=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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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엄마 잡학사전-89] 혼자 밥을 먹는 게 능숙하지 않은 만 3세 큰아들을 유치원에 보내면서 가장 많이 걱정했던 건 아이의 점심이었다. 밥 먹는 속도가 느린 데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해서다. 매일 저녁 '오늘 점심은 뭐 나왔어? 다 먹었어?'라고 묻는 게 일상이었고 그때마다 아이 대답은 영 시원치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아이가 이따금 "○○가 매워서 못 먹었다"고 말할 때다. 매운 반찬을 빼고도 먹을 만한 반찬이 있었는지, 식사시간이 모자라진 않았는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큰아이는 초등학교에 딸린 병설유치원을 다닌다.

마침 본지에 '만 3세에 짬뽕국물…'유치원 밥' 맞나요'라는 기사가 났다. 비리와 횡포가 난무한 사립유치원을 피해 병설유치원에 보낸 워킹맘의 자녀가 매일 짬뽕밥, 얼큰 수제비, 육개장 등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난다는 내용이었다. 남일 같지 않았다. 내친 김에 초등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급식 메뉴를 점검했다. 그날 따라 새빨간 반찬에 아이가 먹을 것이라고는 밥과 봉지김밖에 없었다. 이렇게 매운 음식이 나올 때마다 아이는 반찬 없이 밥만 먹었던 건지, 배신감과 미안함이 몰려왔다. 나 역시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피해 공립유치원을 택한 워킹맘이다.

유치원 입학 전, 유치원생도 초등학생들과 같은 급식을 먹는다는 설명은 들었지만, 막상 초등학교 식단을 눈으로 보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13세가 먹는 초등학교 식단을 5세 아이에게 주는 발상 자체가 당황스러웠다. 신생아에게 젖 대신 밥을 주는 것과 뭐가 다른 걸까. 하원길에 배고플까봐 들고 간 과자와 빵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거나, 짜거나 매운 음식을 먹어 입 주변이 발갛게 부어오르는 모습을 보면 더 속상하다.

교육부의 유치원 급식 운영관리지침서를 보면 매운 떡볶이, 장아찌류 등 맵고 짠 음식은 삼가도록 돼 있다. 지침서에는 특히 유아는 저작능력이 약하고 소화 흡수 기능이 미숙해 소화장애를 일으키기 쉬우므로 싱겁고 담백한 음식으로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만 3~5세의 평균 신장과 체중을 고려해 필요한 에너지(일 1500㎉)가 초등학교 고학년과 같을 리도 만무하다.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을 봐도 유아(3~5세)와 초등학생의 기준이 다르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신체 기준이나 특성들을 고려하지 않고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에게 같은 식단을 제공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소화 능력과 영양섭취 기준이 다른데 효율성이나 예산을 핑계로 같은 식단을 적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열량이 높은 음식을 유치원생이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비만으로 이어지기도 쉽다.

하지만 당장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맞벌이 부부가 유치원 급식을 문제 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유치원 내 급식실을 따로 설치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이 성인 자전거를 탈 수 없듯, 유치원생도 청소년 자전거를 타기엔 아직 서툴다. 아이들이 연령에 맞는 먹거리를 먹을 수 있도록 교육부와 지자체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권한울 중소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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