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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대법, '여순사건' 희생자 71년 만에 재심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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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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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1948년 전남 여수와 순천에서 일어난 ‘여순사건’ 당시 반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사망한 피고인들에 대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여순사건 민간인 사망자에 대해 재심을 확정한 첫 사례다. 71년 만에 여순사건의 실체가 드러날 지 주목된다. 재심은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진행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내란 및 국권문란죄 혐의로 사형이 선고돼 사망한 장모씨 등 3명에 대한 재심청구사건에서 대법관 9 대 4 의견으로 재심 개시를 결정한 원심에 위법이 없다고 판단, 검사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여수에 주둔하던 14연대가 제주 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뒤, 토벌군 진압 과정에서 1만여명이 사형당한 사건이다.

재판부는 "여순사건 당시 군경에 의한 민간인 체포나 감금이 일정한 심사나 조사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고, 장씨 등 연행과정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도 이에 부합한다"며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밝혔다.

장씨 등은 당시 국군이 반란군으로부터 순천을 탈환한 직후 반란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체포돼 22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곧바로 형이 집행됐다. 당시 이들이 어떤 절차를 통해 수사를 받았는지, 재판 과정에서 입증된 증거는 무엇이었는지 등 아무런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의혹이 일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부터 2008년까지 군과 경찰이 438명의 순천지역 민간인을 내란 혐의로 무리하게 연행해 살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장씨 유족 등은 "군·경이 구속영장 없이 불법 체포·감금해 유죄판결이 나왔다"며 "재심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판결문에 구체적인 범죄사실의 내용과 증거 요지가 없고 순천 탈환 후 불과 22일 만에 사형이 선고돼 곧바로 집행된 점을 보면 장씨 등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없이 체포·구속됐다고 볼 수 있다"며 청구를 수용했다. 검찰은 곧바로 "유족의 주장과 역사적 정황만으로 불법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항고했지만 2심 재판부 역시 "불법으로 체포·구속됐다"며 1심 결정을 유지했다.

당시 검찰은 대법원에 재항고했지만, 대법원 역시 다수의견으로 재심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조희대·이동원 대법관은 "이 사건에서 재심사유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재판이 실제로 있었는지, 장씨 등이 사형 판결의 집행으로 사망한 것이 사실인지 알 수 없고, 판결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공소사실을 알 수 없는 이상 재심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백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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