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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나경원 ‘수석대변인’ 발언, 검증 소홀한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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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의 미디어전망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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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언 시걸은 고전이 된 그의 저서 <기자와 공직자>(1973)에서 세 요인이 뉴스 내용을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먼저, 기자가 뉴스 생산자이다. 여타 사건에 비해 특정 사건을 우선시하고, 해당 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사건의 의미를 해석한다는 이유에서다. 뉴스는 언론사 조직 내 위계적 구조를 거친 게이트키핑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개인의 신념이 기사 내용을 지배한다는 주장은 유튜브 등 1인 미디어에나 적용된다. 둘째, 경쟁적 시장 환경이 뉴스 내용에 영향을 준다. 언론사가 이윤을 창출하려는 기업인 만큼 사주나 광고주의 입장이 뉴스 의사결정 과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설명이다. 셋째, 테크놀로지가 뉴스 내용을 결정한다. 수용자의 생각과 행동 패턴의 변화는 매체에 의해 생산된 지각의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판단에서다. 미디어학자 마셜 매클루언이 “미디어가 메시지다”라 말한 것처럼 특정 미디어가 특정한 내용을 전달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는 이론적 접근이다.

시걸은 뉴스 생산을 합의의 과정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러한 합의가 뉴스 생산 관행과 기자 역할이라는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제1야당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에 관한 일련의 기사를 분석하면 정치 뉴스 생산 관행과 기자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 유추할 수 있다. 우선, 기자는 권력자의 말과 행동에 주목한다. 지위가 높은 공직자일수록 정책이나 사회 현상에 대해 더 신뢰할 만한 설명과 해석을 제공한다는 믿음, 그리고 뉴스는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공신력을 갖춘 누군가가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고 말한 것이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둘째, 기자는 정치적 갈등에 주목한다. 나경원 의원의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과 이에 대한 집권당 의원들의 격렬한 반발, 미국 <블룸버그> 통신 기사를 인용했다는 해명과 그 기사를 작성한 한국인 기자에 대한 비난, 집권당 논평에 대한 서울외신기자클럽의 대응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셋째, 누가 정치적 이득을 챙기는지 따진다. 전략적 동기와 정치적 이해득실 측면에서 연설문 준비 과정과 정당의 반응을 해석하고(3월13일 한국방송 <뉴스9>), 나 의원의 ‘초강경’ 연설이 지지층을 결집시켰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한다(조선일보 3월18일치 6면). 넷째, 해석자로서 기자의 역할은 언제나 보호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외신기자클럽의 성명서 내용을 인용하면서 민주당의 논평이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주장에 동의한다(조선일보 3월18일치 1면). 반면 팩트 체크에는 무관심하다. <국민일보>(3월15일치 1면)처럼 나 대표가 인용했다는 블룸버그 기사 제목이 취재원 발언이나 본문에 등장하지 않는 ‘작문형’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기사는 매우 드물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2018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인터넷뉴스 이용률이 80%를 넘고 이용자의 70% 이상이 포털의 뉴스서비스 사이트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환경에서 기자들은 경쟁적으로 파편화된 기사를 작성하고 언론사는 이를 신속하게 전달한다. 테크놀로지 발달과 더불어 변모한 뉴스 소비 환경이 뉴스 생산 관행 및 기자 역할 인식을 더 왜곡시킨다. 언론의 역할과 언론인의 직업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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