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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서울시 입맛대로면 정비사업 난망"…규제 피한 1대 1 재건축도 동력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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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도시정비사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과정에 개입하겠다고 밝히면서 상당수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도시 경관 수준을 끌어올리고 민간과 협력해 인·허가 절차를 줄이는 효과를 내겠다는 취지라고 서울시가 밝혔지만, 시가 정비사업 관리·조정 권한을 모두 쥐게 될 경우 조합의 자율성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분석된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임대주택 비율 등 정부 규제를 피해 추진되던 1대 1 재건축마저 난관에 부닥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12일 내놓은 ‘도시·건축혁신안’을 통해 정비사업 초기 단계에 사전공공기획을 신설해 정비사업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정비사업 전 과정에 시가 개입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도시·건축혁신을 위한 뉴 프로세스’에 나서기로 했다. 모든 아파트 정비사업에 적용될 ‘서울시 아파트 조성기준’을 마련하고 현상설계와 특별건축구역 등의 제도도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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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아파트 단지.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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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정비사업에 또 찬물"

재건축·재개발사업은 이미 2018년 초부터 족쇄가 채워졌다. 재건축안전진단 강화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부활에 이어 8·2부동산 대책을 통해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를 금지하면서 사업성은 곤두박질쳤다. 올해 들어 수억원씩 붙었던 분양권·입주권 프리미엄은 급격하게 빠졌고 서울 재건축 아파트는 18주째(8일 기준) 하락했다.

서울시의 새 정비사업 지침은 또 다른 ‘규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가 사전 공공기획을 통해 층수와 높이, 건축 디자인, 임대가구 비율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밝힌 이상 정비사업 계획에 조합의 뜻을 온전히 반영하기 어렵게 됐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의 경우 국제 설계공모를 통해 재건축 사업을 추진해왔는데 정작 이렇게 선정된 국제 설계공모가 주민 반발에 부딪히는 갈등을 겪은 사례도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은 사업시행인가 이전 단계에 있고 정비계획을 확정하지 않은 재개발·재건축 현장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추진할 땐 사업시행인가 이전인 조합설립인가 단계에서 건축설계와 건축·교통·환경영향평가 등의 절차를 진행하는데, 서울시는 설계회사를 선정하지 않는 모든 단지에 현상설계를 적용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설계사를 선정한 단지의 경우 현상공모 대신 공공건축가가 참여한다. 주민 의견은 배제되고 서울시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압구정동 ‘구현대 1~7차’, ‘신현대’, ‘한양 1~8차’, 양천구 목동 1~14단지 등이 이런 곳에 해당한다. 특히 압구정동 구현대나 대치동 은마아파트, 목동 1~14단지 등은 거대 블록으로 조성된 대단지라 더 큰 진통이 예상된다. 서울시가 거대 블록으로 조성된 대단지를 여러 개 중소블록으로 재구성해 중간 보행로를 내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서울시 아파트 조성기준’을 따른다면 이들 단지의 사업성도 떨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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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향후 정비사업에 적용하겠다고 밝힌 도시·건축 혁신을 위한 뉴 프로세스.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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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피해 추진한 1대 1 재건축 어쩌나

빗발치는 정비사업 규제를 피하기 위해 추진되던 1대 1 재건축도 사업을 낙관할 수 없게 됐다. 1대 1 재건축이란 원래 집 면적과 비슷한 수준으로 재건축해 일반분양을 거의 늘리지 않는 방식을 말한다. 압구정 3구역을 비롯해 대치동 은마아파트, 용산구 이촌동 왕궁아파트 등이 이런 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대 1 재건축은 일반분양을 통한 수익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할 수 있고 임대주택을 넣지 않아도 돼 사업성이 좋은 강남이나 용산 등을 중심으로 추진됐다.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지 않으면 늘어난 용적률의 절반에 해당하는 임대주택을 지어야 하는 규정을 따르지 않아도 되고, 조합원에게 분양하는 주택이 기존 주택의 전용면적보다 작거나 30% 범위에서 그 규모를 확대하면 국민주택 규모(전용 85㎡ 이하)의 주택이 전체 건립 가구의 60% 이하여야 하는 규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앞으로 서울시가 사전공공기획단계부터 개입해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이후 설계공모까지 좌지우지하게 되면 사업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1대 1 재건축을 추진하는 압구정3구역의 경우 최고 49층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한강변 35층 규제를 내건 서울시와 향후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정비업계 한 전문가는 "정비사업 목적이 내 돈을 최소한으로 들여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것이고 이게 뜻대로 안 되니 돈이 많이 드는 1대 1 재건축을 추진하는 건데, 서울시가 정비계획 이전부터 개입하게 되면 내 집도 내가 마음대로 못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특히 거대 블록을 쪼개 단지 중간에 보행로를 넣고 커뮤니티 공간 등을 조성하는 건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도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진혁 기자(kinoey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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