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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심술 많은 서모에게 구박받고, 옛 어머니 생각에 울어본 적 몇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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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년 / 임시정부 100년] [3·1운동 막전막후] [3] 학생들이 3·1운동 주도하다

1924년 경성의전 졸업앨범 공개

1919년 3·1운동에 앞장섰던 경성의전의 한국인 졸업생 49명이 일본인 졸업생과 따로 만들었던 졸업앨범이 공개됐다.

총독부 산하 관립 학교에서 한국 학생들만의 졸업앨범을 만든 것도 이례적인데, 앨범 머리말엔 항일 의식이 강하게 담긴 글이 적혀 있다. '심술 많은 서모(庶母·계모)에게 때때로 죄 없는 구박을 받고 불쌍한 외로운 형제들, 옛 어머니 생각하고 머리를 맞대고 울어본 적이 몇 번이며….' 문장 속 '심술 많은 서모'는 가깝게는 학교 당국, 넓게는 조선총독부와 일본 제국주의를 가리킨다. '옛 어머니'는 우리나라 또는 한민족을 의미한다. 일제 차별 교육과 가혹한 식민 통치를 빗댄 것이다. 앨범은 이어 '(서모가) 등을 때려서 밖으로 쫓아낼 때 젖 먹던 힘을 모아 반항한 적 몇 차례냐!!'고 썼다.

졸업생들이 일제의 차별 교육에 '구박받고' 학대받았다고 한 표현은 빈말이 아니었다. 1921년 5월 말 일본인 교수가 한국인은 '해부학적으로 야만인에 가깝다'는 폭언을 했다. 한국인 학생 194명 전원은 동맹 휴학과 집단 자퇴로 맞섰다. 이 교수의 폭언 파문은 당시 본지가 한 달 내내 속보를 내보낼 만큼 뜨거운 이슈였다. 경성의전 1924년 졸업생 49명 중 9명은 훗날 의학박사가 됐고 서울대병원장·성모병원장을 지내는 등 국내 의료계 1세대로 활약했다.

김상태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 교수는 "식민지 시절 관립학교를 다닌 학생들이 이런 민족 의식, 항일 의식을 드러낸 졸업앨범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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