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년 / 임시정부 100년] [3·1운동 막전막후] [3] 학생들이 3·1운동 주도하다
1924년 경성의전 졸업앨범 공개
총독부 산하 관립 학교에서 한국 학생들만의 졸업앨범을 만든 것도 이례적인데, 앨범 머리말엔 항일 의식이 강하게 담긴 글이 적혀 있다. '심술 많은 서모(庶母·계모)에게 때때로 죄 없는 구박을 받고 불쌍한 외로운 형제들, 옛 어머니 생각하고 머리를 맞대고 울어본 적이 몇 번이며….' 문장 속 '심술 많은 서모'는 가깝게는 학교 당국, 넓게는 조선총독부와 일본 제국주의를 가리킨다. '옛 어머니'는 우리나라 또는 한민족을 의미한다. 일제 차별 교육과 가혹한 식민 통치를 빗댄 것이다. 앨범은 이어 '(서모가) 등을 때려서 밖으로 쫓아낼 때 젖 먹던 힘을 모아 반항한 적 몇 차례냐!!'고 썼다.
졸업생들이 일제의 차별 교육에 '구박받고' 학대받았다고 한 표현은 빈말이 아니었다. 1921년 5월 말 일본인 교수가 한국인은 '해부학적으로 야만인에 가깝다'는 폭언을 했다. 한국인 학생 194명 전원은 동맹 휴학과 집단 자퇴로 맞섰다. 이 교수의 폭언 파문은 당시 본지가 한 달 내내 속보를 내보낼 만큼 뜨거운 이슈였다. 경성의전 1924년 졸업생 49명 중 9명은 훗날 의학박사가 됐고 서울대병원장·성모병원장을 지내는 등 국내 의료계 1세대로 활약했다.
김상태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 교수는 "식민지 시절 관립학교를 다닌 학생들이 이런 민족 의식, 항일 의식을 드러낸 졸업앨범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김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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