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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고 김용균씨 62일 만에 영면…“그는 죽음으로 이땅의 수백만 용균이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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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서 발인 뒤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서 노제

서울 광화문 노제에는 3000여명 시민 모여 마지막 배웅

“젊디젊은 김용균 보내는 날…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자”

용균씨 어머니 “다시 만날 날 꼭 안아주마” 마지막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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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균아 너를 어쩔 수 없이 차가운 냉동고에 놔둘 수밖에 없는 엄마가 너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구나…(중략)…언젠가 엄마 아빠가 너에게로 가게 될 때, 그때 엄마가 두 팔 벌려 너를 꼭 안아주고 위로해 줄게.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한다. 내 아들 용균아”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지난해 12월11일 새벽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김용균씨의 장례식이 9일 엄수됐다. 김씨가 사고로 숨진 지 62일 만이다. ‘고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이날 새벽 4시 빈소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해 고인의 일터인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서울로 올라왔다. 3000여명(주최측 추산)의 시민이 노제에 참여해 김씨의 마지막 길를 배웅했다.

이날 오전 3시30분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층에는 ‘내가 김용균이다’는 문구를 가슴에 매단 사람들이 김용균씨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복도 양 끝으로 줄 지어 섰다. 김용균씨의 외사촌인 황성민(25)씨가 김씨의 영정사진을, 이준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지회장이 위패를 들었다.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씨는 퉁퉁 부은 눈으로 아들의 영정 사진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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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를 좋아하고 반지의 제왕 절대반지를 갖고 싶던 꿈 많던 청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을 착한 아들, 부모님의 하나밖에 없는 희망.”

장례위원장인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김용균씨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박 대표는 “(그랬던 김씨가) 군대를 갓 제대하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공기업인 발전소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지 3개월 만에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조서를 낭독했다.

울음을 참던 유가족들은 관이 안치실 밖으로 나오자 “용균아”를 외치며 통곡했다.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김씨의 주검이 운구차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히자 사람들은 묵념했다.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묵념이 끝난 뒤에도 눈을 감고 몇 초 동안 운구차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차는 충남 태안으로 향했다.

오전 6시45분. 운구차가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정문에 도착했다. 운구차 앞에서는 ‘내가 김용균이다 ‘죽음의 외주를 멈춰라’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여 어서 오라’ 등의 문구가 적힌 만장 8개가 휘날렸다. 바람은 차고 거셌다. 만장이 휘청거리자 누군가가 “2인 1조”를 외쳤다. 만장 하나당 한 명씩 더 붙은 뒤에야 만장은 바람 속에서도 꼿꼿하게 설 수 있었다. 그 뒤로는 방송 차량과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라고 적힌 명정이 섰다. 영정과 위패, 운구차, 대형 영정 사진을 비롯해 김용균씨가 환한 빛 앞에서 손을 펼치고 편안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는 부활도도 순서대로 행렬을 뒤따랐다.

행렬은 태안화력발전소 정문에서 출발해 김용균씨가 일했던 화력발전소 9·10호기 앞에 다다랐다. 7시가 넘어섰고 어렴풋이 동이 트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유가족과 함께 출발한 김용균 씨의 동료, 시민을 포함해 충남 지역 노동자까지 모두 400여명이 그 자리에 참석했다. 노제가 시작되기 전, 유가족들이 제를 지냈다. 황성민씨가 절을 두번 하는 동안 김미숙씨는 미동 없이 김용균 씨의 영정 사진을 바라봤다. 사회를 맡은 구재보 고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조직운구위원장이 구호를 외치며 노제를 시작했다. “내가 김용균이다. 죽음의 외주화 중단하라. 투쟁!” 400여명이 함께 구호를 따라 했지만, 김미숙 씨는 입을 떼지 못했다.

박태환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산업노조 위원장은 추모사에서 “(김용균씨가) 어둡고 차디찬 컨베이어 벨트에서 목숨을 잃은 지 62일 지났다. 그럼에도 우리는 님을 차가운 냉동고에 그 기간 동안 다시 뉘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그러나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고인의 목숨을 잃고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와 아비의 침통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다시는 우리 아들과 같은 목숨을 잃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외치는 부모님의 애절한 마음을 가슴 깊이 새기겠다”고 말했다. 김미숙씨는 추모사를 들으며 중간중간 보라색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여기서 못다 핀 청춘 저 하늘나라에서는 꼭 훨훨 날아가시길 바라겠다”는 문장이 나올 때는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김미숙씨의 시선 끝에는 하얀 연기를 잔뜩 내뿜는 굴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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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문용민 민주노총 세종충남 본부장의 두번째 추모사가 낭독됐다. 사과로 시작해 사과로 끝나는 추모사였다. 문 본부장은 “용균이 아버님 어머님 죄송하다”며 입을 뗐다. 이어 “청년 노동자 김용균은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의 죽음의 외주화로 돌아가는 컨베이어에 제동을 걸었다. 이러한 자본의 탐욕이 당연시되는 사회 구조에 제동을 걸었다. 김용균님은 죽음의 컨베이어를 자신의 죽음으로 멈추게 함으로써 이땅 수백만의 용균이들을 살려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비정규직 굴레를 벗어버리고 그 짧았던 그 한 많은 이승을 떠나려고 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만 보고 살았던 참혹한 죽음마저 놓지 못했던 부모님을 놓고 결코 떠나기 힘들 거란 거 잘 안다” 문 본부장의 말에 용균씨의 어머니 김씨는 결국 북받친 감정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눈물을 흘렸다.

김용균씨와 같은 1파트 팀원이었던 김선호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지회 조합원은 김용균씨와 김씨의 부모님에게 편지를 썼다. 김 조합원은 김용균씨에게 “진상규명은 6월30일까지 조사 결과 발표라 너의 억울한 죽음은 그때가 돼서야 확실시될 것 같아. 너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 이렇게 너를 보내는 데까지 많이 늦어버렸구나”라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김씨의 부모님에게는 “저는 용균이보다 4개월 정도 먼저 입사한 용균이와 같은 신입이다”라며 “많은 일정과 부정적인 언론, 태안 시민들의 부정적인 태도 등이 너무 지쳐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용균이의 사고 후, 저를 끌어안아 주시며 이 일이 열악하고 위험하니 어서 너희는 이곳에서 나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리고 추운 날 어머니께서 손잡아 주시면서 위로와 격려를 해주시고 저희보다 앞에서 나와 싸워주시는 모습을 봤을 때 큰 힘이 되어 지금까지 온 것 같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최규철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노조 한전산업개발지부 태안지회장은 “이제는 작업 현장이 안전한 세상,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현장을 꼭 만들겠다. 김용균 동지여, 편히 영면하소서”라며 호상 인사를 밝혔다. 이날 양승조 충남지사도 태안 노제를 찾았다. 양 지사는 “김용균 동지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 사람다운 세상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겠다”고 말했다. 태안에서의 1차 노제는 헌화를 마지막으로 오전 8시께 끝이 났다.

김씨의 운구차는 다시 3시간을 달려 서울에 도착했다. 김용균씨의 민주사회장을 위한 운구 행렬은 오전 11시께부터 전열을 가다듬었다. 김용균씨를 나타내는 상징물을 시작으로 비정규직100인 대표단이 그뒤를 따랐다. 이들은 김용균씨가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는 문구를 들고 찍은 사진과 ‘김용균의 마음으로 싸우겠습니다. 비정규직 이제 그만’이라는 문구가 함께 담긴 피켓을 들었다. 다음으로 50여개의 만장, 풍물패, 명정, 방송 차량, 영정과 위패, 꽃상여, 운구차, 유가족, 대형 영정, 부활도 순으로 섰다. 행렬의 제일 끝에는 보라색 풍선을 든 사람들이 섰다. 그 앞에는 약 100여개의 단체 깃발이 나부꼈다.

2차 노제는 서울 종로구 흥국생명 광화문지점 앞에서 시작됐다. 최준식 고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장례위원장은 “동지의 죽음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 발짝도 꿈쩍거리지 않던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개정됐다.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시민 인식이 눈부시리만큼 향상되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의 발언과 함께 운구 행렬은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간격 조정을 위해 잠시 행진이 멈추기도 했다. 김용균씨의 영정 사진을 든 황성민씨는 그사이, 서울도서관 외벽에 붙은 김복동 할머니의 추모 사진을 바라보기도 했다. 서울도서관 한쪽을 가득 채울 만큼 큰 플래카드에는 김복동 할머니의 사진과 함께 ‘후손들은 마음 놓고 살아가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고 적혀 있었다. 광화문 대로를 가득 메운 행렬에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췄다. 시청역 5번 출구 앞에서 만난 시민 이아무개(52)씨는 “운구차가 오는 모습을 보고 울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장례를 치르게 돼 잘 됐다”며 “컨베이어 벨트에 말려 들어 가는 장면이 계속 상상됐다. 사고 원인이 빨리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긴 행렬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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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2시께 분향소의 초를 밝히며 김용균씨의 민주사회장 영결식이 시작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3천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다. 유가족을 중심으로 고문, 장례위원장, 발전비정규직, 산재 피해자, 세월호 유가족 등이 영결식 앞쪽을 채웠다.

‘작은 용균이’ 김용균씨와 이름이 같은 ‘큰 용균이’ 김용균씨가 편지를 낭독했다. 김씨는 “꿈을 위해 열심히 배우고 일하던 용균이. 매일 저녁을 늦게 먹으면서도 내일을 위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용균이, 그 젊음이 부러웠던 용균이. 작은 용균이, 네가 너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도 ‘고 김영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고문’으로 영결식에 참석했다. 백 소장은 김미숙씨 옆에 앉아 슬픔을 위로했다. 백 소장은 무대에서 “용균이는 죽은 게 아니다. 돈이 주인이고 돈밖에 모르는 이 사회가 용균이를 학살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진혼무가 이어졌고, 참석자들은 진상 조사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에 돌입했던 ‘6인 단식단’의 조사를 영상으로 함께 보며 슬픔을 나눴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눈이 부시도록 푸른날이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청춘이다. 그의 푸른, 젊디젊은 김용균을 보내는 날이다. 하지만 남아있는 김용균들의 앞날이 미래가 푸르도록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어내겠다고 다짐하자. 아니 다짐한다. 아니 해내겠다”고 조사를 전했다. 송경동 시인은 <진상을 규명해야지요>라는 시를 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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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린 김미숙씨는 고 이한빛PD의 어머니 김혜영씨의 조사를 들으며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이한빛PD는 장시간 노동을 폭로하는 유서를 남긴 뒤 2016년 숨졌다. 김혜영씨는 울면서 조사 낭독을 시작했다. 그는 “저도 3년 전, 스물일곱살의 아들 한빛을 잃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한빛의 방문을 열다가 가슴을 움켜쥘 만큼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에게는 자식을 잃은 날 시간도 함께 멈춘다. 기억도 멈춘다”고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아픔을 전했다. 그는 “사랑하는 아들, 용균이와 한빛아 그리고 죽음의 노동 현장에서 먼저 간 아들과 딸들아, 고단한 삶 다 내려놓고 하늘나라에서는 평화의 안식을 누리길 기대한다”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김혜영씨는 김미숙씨에게 다가가 포옹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두 어머니는 오열했다.

유가족 발언도 이어졌다. 이들이 무대로 오를 때는 “내가 용균이 엄마다, 내가 용균이 아빠다, 우리 모두가 용균이다”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김미숙씨는 “용균아 너를 어쩔 수 없이 차가운 냉동고에 놔둘 수밖에 없는 엄마가 너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구나. 하지만 엄마는 너의 억울한 누명을 벗어야 했고, 너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많은 사람들이 너를 오랫동안 잊지 않고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단다”라며 “정부와 서부 발전 그리고 네가 속해있던 한국 발전기술에서 어제 너한테 공식 사과문을 발표해서 너의 잘못이 없다는 걸 선포했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엄마 아빠가 너에게로 가게 될 때, 그때 엄마가 두 팔 벌려 너를 꼭 안아주고 위로해줄게.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한다. 내 아들 용균아”라고 먼저 간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도 참석했다. 이들은 헌화를 마치고 김미숙씨를 안아주며 위로했다.

고인의 주검은 이날 오후 2시30분께 경기 고양 덕양구 벽제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된 뒤,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 안치됐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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