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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뉴스분석] 소득주도성장 근간 논문엔 "전세계가 채택해야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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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성장의 근간인 외국 논문 보니

"모든 나라가 채택해야 성공하는 전략"

내수 규모 작고 수출 주도형 국가에 안 맞아

한국만 소득주도성장…경제 경고등 이유 짐작

"실증되지 않는 이론"…국가 경제 실험하는 셈

소득주도성장론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내년 예산안을 놓고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소득주도성장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비록 포용국가라는 단어를 9번이나 언급하며 소득주도성장(두 번)보다 많이 썼지만 단어를 교체했을 뿐 소득주도성장의 틀을 유지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4일 "경제 위기론은 근거가 없다"며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며 소득주도성장 고수 의지를 밝혔다. 6일 국회에선 "촛불 민심을 위해 가장 잘한 일은 소득주도성장"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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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정책실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 질의를 듣고 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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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과 투자, 고용, 소비, 수출 등 경제전반이 급전직하하는 상황이다. "현 경제상황이 위기가 아니다. 가장 잘 된 경제정책을 하고 있다"는 청와대의 주장에 야당과 경제계, 학계는 물론 정부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김광두 부의장은 "정부 정책이 일자리를 파괴한다면 정의로운 경제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은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임금주도성장:개념, 이론, 정책(Wage-led growth:Concept, theories and policies)'이라는 논문이 나오면서 부상했다. 후기 케인즈 학파인 마크 라보이(Marc Lavoie, 캐나다 오타와대)와 엥겔베르트 스톡하머(Engelbert Stockhammer, 영국 킹스톤대)가 썼다. 더불어민주당과 학계 일부에서 이를 인용했고, 현 정부 들어 제도로 구현하려 시도했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해 11월 서강대 정책세미나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은 논리적인 비약과 불완전성이 존재하고, 그 인과관계가 학계에서 실증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가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무리한 가정에 의존해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이 이 이론을 택한 것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을 국가 경제와 국민을 대상으로 놓고 실험하는 것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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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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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논문 제목에서 보듯 임금주도성장은 일자리가 있는 사람, 즉 임금을 받는 사람을 대상으로 삼는다. 일자리가 없으면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논문은 "개방경제에서는 순수출 효과가 내수 효과를 압도한다"고 했다. 한국과 같은 국가가 이에 해당한다. 인구 등 여러 요인 때문에 한국은 내수로 국가 경제를 지탱하기 어렵다. 수출로 성장을 이뤄왔다. 현재도 한국 경제는 무역으로 버틴다.

이 논문이 지적하고 있는 논거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그다음이다. "'모든 나라가 동시에' 친노동적 분배정책을 실행하면 (기업) 이익이 총수요를 끌어올리는 국가(수출주도형 나라)도 해외성장의 가속화에 따라 수출 관련 경제활동을 촉진한다"고 한 대목이다. 다른 나라와 함께 소득주도성장을 하면 해외의 그 나라도 성장이 가속화해 결국 모든 나라가 잘 산다는 의미다. 그래서 "임금주도성장 전략은 '국제적인 공조'가 이뤄지면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략"이라고 했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소득주도성장'을 택해야 성공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현 정부가 고수하는 소득주도성장은 따지고 보면 '글로벌 경제의 운전자'를 자처한 꼴이 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다른 나라가 소득주도성장의 길에 따라오지 않으면 한국만 글로벌 경제의 왕따로 전락해 경제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 운전자론이 사실은 운전 교습인 셈이다. 그에 따른 고통은 경제 위기론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이 전 세계 경제를 선도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와 관련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소득주도성장론을 야당(당시 민주당)이 띄우던 2015년 4월 이렇게 말했다. "포드가 임금을 올린 것은 도요타가 당시에 없었기 때문이다. 도요타가 있는데도 그렇게 임금을 올렸다면 포드는 시장을 도요타에 모두 내줬을 것이다." 한국만 '고용대참사'를 비롯한 경제 위축사태를 겪는 이유를 3년 6개월 전에 짚었던 셈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개방 경제하에서는 (수출기업의 경우) 임금인상에 따른 비용조건 악화가 국제가격 경쟁력의 저하로 나타나고, 반면 (해외에서 결정되는) 수요 조건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수출기업의 임금인상이 생산시설 활용도 증가로 이어지기보다는 생산시설 활용도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도 했다. 지난해 9월 한국경제학회 정책세미나에서다. 실제로 소득주도성장 실험이 진행되면서 기업의 설비투자는 수직으로 낙하하고 있다.

논문 저자인 마크 등은 "경제를 위해 국가 개입을 확대해야지 축소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제회복을 위한 성공적 정책과제의 필수 요소는 지속적인 임금상승"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결정하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과 상통하는 대목이다. 마크 등은 덧붙여 "생산성과 임금이 함께 올라야 부채증가 없이 소비가 성장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은 생산성 향상에 대한 대책은 없다. 민간 부채는 계속 증가하고, 소비는 쪼그라드는 지금 상황과 대비된다.

논문은 소득주도성장의 성공을 위해 금융부문의 구조조정(개혁)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개혁 방안이 "금융을 협의의 은행을 기반으로 재편성하라"는 주문이다. 대출 활동이 없고, 예금과 지급 결제 기능만 하는 은행이다. 불안정한 금융 혁신 상품을 제거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의 금융시스템을 부정하고, 돈을 맡기고 찾는 원시적 행위를 개혁이라고 한 셈이다. 1930년대 최악의 불황이 금융 규제를 완화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펴면서다.

마크 등은 수출과 내수의 체질 개선도 주문했다. 수출에 대해서는 "수출상품의 종류를 가격경쟁에 덜 민감한 방향으로 조금씩 바꿔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제품 개발과 혁신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혁신을 하더라도 상품은 결국 가격경쟁이 불가피한데, 이걸 부정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나온다. 내수 부문에선 "실업보험이나 노령연금 같은 사회복지체계가 임금 근로자의 저축을 줄이고 임금대비 소비성향을 높인다"며 이게 임금주도성장으로 나가는 데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박정수 서강대 교수는 "임금인상을 통한 경기 부양과 성장은 근거가 약할 뿐 아니라 오히려 생산성 제고가 없는 임금인상은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한다는 점은 그동안의 실증분석을 통해 확인된다"고 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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