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6 (목)

농촌에 필요한 건 기부 아닌 투자 [현장메모]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세계일보

“대기업이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누린 혜택을 농민하고 나누자는 게 상생협력기금이잖아요. 이런 지적이 갑질이라면 얼마든지 하겠어요.”

지난 1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림축산식품부 국정감사에서 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이 5대 기업(삼성·LG·SK·현대차·롯데) 관계자를 불러놓고 한 말이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의 기금 조성 실적이 저조하자 정 의원과 김정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5대 기업 관계자를 일반증인으로 신청해 사실상 기금 기부를 촉구했다.

대중소기업 농업협력재단은 FTA 비준으로 타격을 본 농어민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 지난해 민관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 모금을 시작했다.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1조원을 조성하겠다고 목표를 세웠지만 11일 현재 378억원밖에 모이지 않았다. 대기업에서 낸 기부금은 4억5900만원에 불과하다.

이날 기업 임원들은 한목소리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농축산물 개방으로 위협받는 농업 현실과 농촌과 도시의 양극화를 설명하며 상생을 외치는 의원들 앞에서 ‘No’라고 말할 임원들은 없었다. 그러나 국감 현장에 출석한 임원들에게 농업과 농민은 어떻게 비쳤을까. ‘상생협력기금에 돈 내고 가끔 농산물 사면 더는 떼쓰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10시간 넘는 국감 동안 기업 임원들에게 농업 분야 투자를 설득하거나 농업의 비전을 보여준 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는 스마트팜 농장은 삼성의 인공지능(AI) 기술, SKT의 무선 네트워크·빅테이터 기술, LG화학의 신재생 에너지 기술 등을 응용할 수 있는 실험장이다. 그러나 농업계 반발 때문에 대기업은 농업시장 진출은커녕 농업 분야 투자나 관련 기술 개발을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그 사이 구글과 알리바바, 소프트뱅크는 농업 첨단기술 스타트업에 수천만 달러를 투자하면서 미래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무조건 상생협력기금 기부를 촉구할 것이 아니라 대기업이 보유한 기술과 연구개발 인력을 활용해 농업 전반에 혁신을 도모할 수 있는 발전의 전기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농업과 농촌에 필요한 것은 기부가 아니라 투자다.

이창훈 사회2부 기자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