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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몸무게 69.9㎏에서 70.1㎏ 되면 짜증 확 치미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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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신현호의 차트 읽어주는 남자

(22) 왼쪽 자리 값 효과


대부분의 중년 남자들이 그렇듯이 저 역시 과체중이 큰 걱정입니다. 매년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의사 선생님한테 핀잔을 들어서, 얼마 전부터 살을 빼려고 나름 열심히 식사량도 줄이고 운동도 하면서 저울을 사다 두고 매일 체크를 합니다. 그렇게 몇개월 노력을 해서 몸무게를 꽤 줄여 요즘은 70㎏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사람 심리가 참 묘하더군요. 69.5㎏에서 69.9㎏으로 늘 때는 크게 신경쓰이지 않는데, 70.1㎏이 나오면 짜증이 확 치밉니다. 매일 아침마다 ‘오늘은 제발 6자 보자’ 하는 심정으로 저울에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작은 차이인데 왜 이렇게 60㎏대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나 약간 어이없어 하다가, 소위 ‘9900원 마케팅’이라는 것으로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9900원의 비밀

스티브 잡스가 2003년 아이튠스를 통해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을 개척하면서 표준 가격을 99센트로 책정한 바 있는데요. 이렇게 가격을 9로 끝내는 것은 미국 마케팅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는 전략입니다. 미국 서부 지역의 유명 할인 체인점 ‘99센트 온리 스토어’는 아예 이름부터 이것을 표방한 것이죠. 1982년 설립된 이후 현재 350개의 매장을 갖고 있는데, 대부분의 제품 가격이 99.99달러 등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뉴욕 타임스>의 2009년 보도에 의하면 역사상 가장 오래된 99센트 마케팅 사례는, 뉴욕 백화점 업계의 거물이었던 롤런드 메이시가 1880년에 ‘양질의 블랙 실크를 제품당 99센트에 판매’한다는 광고를 <뉴욕 타임스>에 게재한 것이라고 하니, 그 역사가 100년이 넘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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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국만의 현상도 아닙니다. 럿거스대의 경영학자 로버트 신들러는 1997년 미국의 <뉴욕 타임스> <엘에이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6개 신문과 일본의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 주요 6개 신문에 광고가 실린 상품의 가격을 조사하였습니다.(‘미국과 일본의 광고 가격의 끝자리 유형’, <인터내셔널 마케팅 리뷰>, 2009) 그 결과가 (그림1)에 표시되어 있는데요. 미국의 경우는 9로 끝나는 가격이 52.2%로 가장 흔하였고, 일본의 경우는 8로 끝나는 가격이 37.5%로 가장 널리 발견되었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바가 없지만 우리 역시 8 또는 9의 비중이 매우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이들이 조사한 끝자리 값은 말 그대로 끝자리는 아닙니다. 우리나라나 일본의 경우 화폐 단위의 속성상 2999원 형태의 가격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컨대 2900원은 9로 끝나는 가격으로 카운트하는 방식으로 조사한 것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비록 두 나라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가격 설정 유형은 모두 공통적으로 제일 왼쪽 자리의 값을 줄이는 효과를 겨냥한 것입니다. 이것을 ‘왼쪽 자리 값 효과’라고 부르는데요. 관련된 많은 연구 중에서 코넬대와 뉴욕대의 마케팅학자 마노지 토마스와 비키 모위츠의 연구를 살펴보겠습니다.(‘가격 인식에 있어서의 왼쪽 자리 값 효과’, <저널 오브 컨슈머 리서치>, 2005) 이들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0과 9로 끝나는 펜의 가격을 제시하고 그 가격이 얼마나 높아 보이는지 5점 척도로 평가하게 하였습니다.

먼저 (그림2(A))에서 2.99달러와 3.00달러의 비교를 볼 수 있는데요. 2.99달러라는 가격의 심리적 크기는 3.00달러에 비해 뚜렷이 낮았습니다. 하지만 (그림2(B))에서처럼 3.59달러와 3.60달러를 비교하는 경우에는 차이가 미미했고,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하지 않았습니다. 토마스 교수는 두 경우의 비교 모두 1센트 차이로 동일하였지만, 첫번째 비교에서는 가장 왼쪽 자리의 값이 2와 3으로 달라졌고, 두번째 비교에서는 이 값이 모두 3으로 동일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이해하고, 이를 ‘왼쪽 자리 값 효과’(left-digit effect)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제가 몸무게를 재면서 68, 69, 69.9㎏을 ‘60㎏대’로, 70, 70.1, 71, 72㎏을 ‘70㎏대’라고 이해하면서 가장 왼쪽 자리의 값에 주목한 것과 마찬가지 현상입니다.

가격 끝자리 ‘9’로 끝나는 마케팅
미국서 100여년 전부터 시작
상품가격 절반 이상이 9로 끝나
일본서는 8로 끝나는 비중 높아

제일 왼쪽 자리 값에 민감 반응하는
‘왼쪽 자리 값 효과’ 활용한 것
상품명, 중고차 거래서도 같은 효과
담뱃값 왼쪽 자리 변할 때 금연 늘어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토록 왼쪽 자리 값에 주목하는 것일까요? 그 단초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동료 심리학자 아모스 트베르스키와 함께 수행한 심리 실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가용성: 빈도와 확률을 판정하는 데 사용되는 어림짐작’, <코그니티브 사이콜로지>, 1973) 이들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빠른 시간에 1부터 8까지 곱하기한 결과를 적어 내게 했는데, 두 그룹에 제시한 문제를 약간 달리했습니다.



첫째 그룹 8×7×6×5×4×3×2×1

둘째 그룹 1×2×3×4×5×6×7×8



두 그룹이 제시한 답의 평균은 충격적일 정도로 달랐습니다. 첫째 그룹의 답은 2250이었는 데 반해, 둘째 그룹의 답은 512에 불과했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종이와 펜으로 계산을 한다면 두 그룹 모두 정답에 가까운 비슷한 값에 도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부족하거나, 또는 숫자의 처리가 피곤하기 때문에 문제의 순서대로 몇번 계산을 하고 거기에 기초해서 답을 어림짐작(heuristic)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첫째 그룹이라면 8 곱하기 7은 56, 여기에 6을 곱하면 330이 조금 넘고, 여기에 5를 곱하면 1500이 넘겠구나, 그래서 얼마, 이런 식이죠. 반대로 둘째 그룹은 1 곱하기 2는 2, 곱하기 3은 6, 곱하기 4는 24, 그래서 얼마, 이렇게 구하는 것이고요.

결국 첫째 그룹은 1500 정도의 숫자에, 둘째 그룹은 24 정도의 수에 기초해서 어림짐작을 하게 되기 때문에 두 그룹은 매우 다른 반응을 하게 된 것입니다. 행동경제학자들이 ‘닻내림’(anchoring)이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아, 정답은 4만320입니다. 두 그룹 모두 틀렸죠. 어림짐작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점에서도 흥미롭지만, 오늘은 두 그룹이 서로 다른 초기 숫자에 주목해서 상이한 반응을 보이는 점에만 집중해서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 예에서라면 가격표에 접한 소비자들도 모든 숫자를 처리하기보다는 왼쪽 자리 값에 주목해서 그 이후 자리 숫자들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도처에서 발견되는 왼쪽 자리 값 효과

실제 이 효과는 가격표 이외에도 많이 발견됩니다. 그중 하나는 숫자를 담고 있는 상품명의 효과입니다. 삼성과 애플의 스마트폰은 이름에 7, 8, 9 등의 숫자를 달고 있고, 자동차도 쏘나타 1.6이나 2.0처럼 배기량을 표시하는 숫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전 인텔의 중앙처리장치는 286, 386, 486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었는데,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심지어 한 세대(386세대)를 상징하기도 했죠. 문자와 숫자가 함께 있는 것을 알파뉴메릭 브랜드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연구는 고려대 경영대학의 석관호 교수와 홍민아씨가 수행했습니다.(‘알파뉴메릭 브랜드의 왼쪽 자리 효과’, <한국심리학회지: 소비자·광고>, 2015)

이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숫자 부분이 1 차이가 나는 가상의 샤프펜슬 브랜드 두개를 제시하고 얼마나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림3)을 보시면 이 실험에서도 브랜드 숫자 부분의 가장 왼쪽 자리 값이 다를 때(G299와 G300)는 지불하려는 가격의 차이가 뚜렷했지만, 왼쪽 자리 값이 같은 경우(G311과 G312)에는 그 차이가 미미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첫자리 값이 높아지면 성능이 뚜렷이 개선된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아래 자리 값 변화는 성능이 미미하게 변화했다고 인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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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를 거래할 때 사람들이 고려하는 중요한 요소는 모델, 생산연도 그리고 주행거리 등입니다. 토론토대 경영대학의 니콜라 라세테라 교수 등은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에서 거래된 2700만건의 중고 자동차 거래 데이터를 이용해서 주행거리가 잔존 가격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했습니다.(‘자동차 시장의 어림짐작과 제한된 주목’,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 2012) (그림4)에서 보시듯 당연히 주행거리가 길수록 가격은 하락하였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주행거리의 만자리 값이 바뀔 때 가격은 불연속적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9600마일, 9700마일, 9800마일, 9900마일 주행한 자동차를 접할 때 가격을 조금씩 조정하지만, 1만마일 주행한 차를 보면 앞의 차들보다 훨씬 더 많이 달린 것으로 받아들이고 가격을 크게 떨어뜨렸던 것입니다.

끝으로 담배와 관련된 예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조지아대 심리학과의 제임스 매킬로프 교수 팀은 담배 가격이 10달러에 이르기까지 20센트씩 인상되면 흡연자들이 금연을 시도하는 비율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추정을 하였습니다.(‘가격의 왼쪽 자리 값이 금연동기에 미치는 효과’, <영국 의학 저널: 타바코 컨트롤>, 2014) (그림5)에 결과가 표시되어 있는데요. 이때도 인상 뒤 가격의 제일 왼쪽 자리 값이 바뀔 때(차트의 빨간색), 금연 유도 효과가 뚜렷하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5.4달러에서 5.6달러로, 5.6달러에서 5.8달러로 인상해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5.8달러를 6.00달러로 인상하면 가격이 크게 올랐다고 느꼈던 것입니다.

왼쪽 자리 값의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적 반응을 여러 측면에서 살펴봤는데요. 재미있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훈이라면 우리의 직관을 너무 믿지 말고 가끔은 냉정하게 대처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 아닐까요? 1만9900원짜리 피자 광고를 볼 때는 1만원대 상품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건 2만원짜리다’라고 주문을 걸고, 중고 시장에서 자동차를 살 때는 어쩌면 2만9000㎞ 뛴 차보다 3만1000㎞ 달린 차에 주목하면 오히려 가성비 좋은 차를 장만하기에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아, 그리고 물론 우리 중년 아저씨들, 몸무게는 왼쪽 자리 값에만 연연하지 말고 꾸준히 줄여야겠죠.

▶ 신현호 데이터 분석가. 20년 동안 숫자와 차트를 작성하고 분석하는 일로 살아왔다. 연애 시절 차트 이야기에 몰두하다 썰렁한 남자로 몰려 차일 뻔한 뒤 충격을 받고 “차트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기치하에 아내를 겨우 설득했다. 그렇게 가다듬은 차트 이야기들로 독자와 대화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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