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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뽀롱이에게 미안하다면 동물원을 바꿔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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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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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이 세번째로 만난 밤이었죠. 평양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가슴이 벅차오르다가도 죽은 퓨마 생각에 마음 한쪽이 불편하셨던 분들 많으셨을 겁니다. 안녕하세요. 애니멀피플팀 최우리 기자입니다. 동물권을 고민하는 기사를 씁니다. 오늘은 그 밤 죽은 퓨마와 동물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아시다시피 퓨마 ‘뽀롱이’는 사람의 ‘실수’로 죽었습니다. 지난 18일 오전 9시께 동물원 직원이 청소하러 우리에 들어갔다가 문을 잠그지 않고 나왔습니다. 열린 문을 본 퓨마는 평소처럼 움직였을 겁니다. 언제 우리를 나갔는지도 몰랐던 동물원은 그날 오후 5시15분 “퓨마가 탈출한 것 같다”고 119에 신고합니다. 소방관과 경찰이 실탄을 준비해 출동했습니다. 동물원의 요청으로 마취 후 생포를 시도했으나 마취가 되지 않자 안전을 고려해 결국 퓨마를 사살했습니다. 이 비극의 시작은 퓨마가 우리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 동물원의 관리 부실 때문입니다.

동물원의 관리 부실로 인한 사건·사고는 이례적인 일이 아닙니다. 국내에서 동물이 우리를 탈출한 사건만 추려볼까요?

1977년 10월 부산 성지공원 동물원에서 사자가 허술한 철책을 열고 나와 1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네요. 1992년 2월 전주동물원에서 눈표범 한 마리가 탈출했다가 9시간 만에 붙잡혔습니다. 당시 기사를 보니 이 눈표범도 멀리 가지 않고 동물원 인근 뒷산 과수원 나무 아래 웅크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1998년 2월 진주동물원에서 새끼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호랑이가 울타리를 넘어 탈출했다가 1시간 만에 사살됐습니다. 당시 <한겨레> 기사를 보니 “동물원에는 이런 사태 때에 필요한 마취총마저 없었으며 호랑이가 탈출하자 서둘러 경찰과 119구조대에 신고해 손쉽게 사살하는 방법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무지’를 보였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2005년 어린이대공원에서 코끼리 6마리가 탈출한 적도 있었지요. 2009년 국립수목원에서는 늑대가 탈출했었다고 합니다. 외국 사건도 수두룩합니다. ‘완전할 수 없는’ 사람이 있고, ‘자기 의지를 가진’ 동물이 있는 한, 동물원에서의 사건·사고는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애초에 생기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미 만들어진 동물원이라면 할 일이 분명합니다. 현대 동물원의 존재 이유로 (인간을 위한) 동물교육, 종보전 등을 꼽지만 기본은 동물을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사육사와 관람객의 안전을 위한 시설 투자는 물론이고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아 이상행동을 하지 않도록 잘 해줘야죠. 그런데 말도 안 통하는 동물을 관리하기란 애초에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는 일입니다. 사실 무슨 선물을 줘도 동물에겐 성에 안 찰 겁니다. 그래도 노력한다면 유전자에 기록돼있는 서식환경을 그대로 재현해주는 것뿐일 겁니다.

그런데 동물원은 어떤가요? 특히 한국 동물원은 어떤가요? 저는 동물원 하면 녹이 슨 철창, 관람객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통유리, 거친 시멘트 바닥, 모양만 자연스러운 인공 구조물 등이 떠오릅니다. 1984년 서울동물원이 개원한 뒤, 똑같은 건축 양식의 지역 공영 동물원 10여곳이 속속 생겨나더니, 2010년대 들어서는 집 근처에서 동물을 만질 수 있는 체험동물원까지 생겼습니다. 동물 종과 수량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고민은 했겠지만, 서식지를 어떻게 마련할까 하는 고민을 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동물을 보유하는 게 동물원의 자랑이고, 그런 동물원이 우리 지역에 있는 것이 자랑이라는 생각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동물원을 없애고 모든 동물을 야생으로 되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오래 걸리겠죠. 돌려보낼 야생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나은 동물원이 되도록 계속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물 종과 수를 줄이고 동물원 사육시설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도 방법입니다. 모든 동물원은 번식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또 서식지를 재현하기 위해 시설을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해야 합니다. 사람 쓸 돈도 없는데 동물원에 돈을 어떻게 쓰냐고요? 외국에서는 동물원의 공공성을 인정해 기부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취재하면서 만난 시민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동물원이 동물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간이라는 걸, 동물원 동물이 인간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고 있다는 걸 말이죠. 그런데도 동물원이 그대로 유지되는 이유는 관람객인 우리가 침묵해서입니다. 퓨마에게 미안하다면 동물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숨을 쉬는 모든 생명에게 예의를 잊지 않는 시민들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최우리 미래라이프에디터석 애니멀피플팀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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