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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특파원리포트] 아베의 ‘삿초동맹’과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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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재 선거 승리 확실시… 한국 경시 외교 경계를

일본 NHK는 해마다 그해의 상징성 등을 고려해 인물과 주제를 바꿔가며 대하드라마를 방송하고 있다. 올해에는 지난 1월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 8시 방송되는 ‘세고돈’이 안방극장 주인공이다.

세고돈은 1868년 에도 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유신(明治維新)에 성공한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의 애칭. 올해는 메이지유신 1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드라마는 세상을 뒤집어엎는 사이고 다카모리의 용기와 실행력, 인간미를 그리고 있다. 지난 8월26일 방송된 제32화의 소제(小題)는 ‘삿초(薩長)동맹’. 삿초동맹은 앙숙이었던 사이고 다카모리의 사쓰마(薩摩·현 가고시마현)와 조슈(長州·현 야마구치현)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존왕양이, 막부타도 기치 아래 손을 잡은 일본 역사의 극적 사건을 말한다.

세계일보

김청중 도쿄 특파원


8월26일은 공교롭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전 출사표를 던진 날이다. 삿초동맹의 한 축이었던 야마구치 출신의 아베 총리는 드라마 방송 수 시간 전 NHK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가고시마의 상징인 사쿠라지마(櫻島) 화산 앞에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일본에서는 이 장면을 놓고 ‘헤이세이(平成·1989년 즉위해 내년 퇴임하는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 시대의 삿초동맹’을 부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아베 총리는 당일 가고시마현 출신 의원 후원회에 참석해 “마침 오늘 세고돈 주제는 삿초동맹이다. 삿초의 힘을 모아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동북아시아의 격변 속에서 20일 사실상 차기 일본 총리를 결정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 결과가 나온다. 이변이 없는 한 아베 총리의 승리가 뻔한 싱거운 승부가 예상된다.

우리의 관심은 선거 이후 일본의 행보다. 아베 총리는 헌법 9조 개정을 공언해온 만큼 자위대의 존재 근거를 마련하는 개헌에 적극 나설 전망이다. 일본 국민이 총의를 모아 결정할 내정문제이지만, 과거 일제의 침탈을 받았던 아시아 국가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개헌 외에 아베 총리 정권이 보여온 특유의 대한(對韓) 경시(輕視) 외교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도 주목된다. 아베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우호 관계를 강조하면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다변화 외교를 펼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남의 필요성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유독 한국에 대해서는 비우호적이다. 문재인정부의 12·28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검증에 대한 불편한 감정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아베 총리는 그동안 한국을 가볍게 보는 외교 노선을 걸어왔다.

사실 삿초동맹의 결과로 성공한 메이지유신은 일본에는 부국강병을 가져왔으나 우리 입장에서는 정한론(征韓論)의 시작이었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동아시아 후진국에서 세계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일본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감정의 찌꺼기가 남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특히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도 정한론의 주창자이자 일본 근·현대 우익의 아버지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다. 아베 총리의 삿초동맹 운운이 과거사와 오버랩돼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필자뿐일까.

아베 총리가 주변국을 경시했던 삿초동맹과 메이지유신 수준의 대외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침략과 침탈, 전쟁으로 이어졌던 과거처럼 동아시아의 갈등은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 동아시아 시대가 열리는 지금,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고 공동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역내 지도자들의 대국(大局)적 관점·의지와 함께, 국민의 감시·견제가 필요하다.

김청중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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