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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혼돈의 조계종…향후 권력구도 오리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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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6일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중앙종회 의장인 원행 스님(뒤쪽 가운데)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불신임안을 표결하기 위해 소집된 중앙종회에서 개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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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처자 의혹 등을 받아온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불신임안이 가결된 16일 오전 종로구 조계사 앞은 소란스러웠다. 설정 스님을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각각 피켓과 확성기를 동원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중앙종회가 시작된 한국불교역사문화관 2층 국제회의장도 긴장감이 흘렀다. 회의가 시작되자 설정 총무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불신임안에 상정될 만큼 종헌종법을 위반한 적이 없다"며 "종단 개혁의 초석을 다진 다음 12월 31일 용퇴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안건 채택 절차가 시작되자 설정 스님 측 스님들은 의사진행발언 등을 통해 "이번 중앙종회는 졸속으로 개최된 회의"라며 "설정 스님 불신임안을 다시 검토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안을 상정한 측은 "종회법상 이미 상정된 안건을 다시 검토하는 경우는 없다"고 맞섰다.

논쟁이 길어지자 설정 스님은 자리를 떴으며, 기자들을 모두 회의장 밖으로 내보낸 다음 표결이 시작됐다. 오전 11시 50분쯤 표결 결과가 발표됐고 불신임안은 가결됐다. 재적의원 75명 모두가 참석한 가운데 안건 통과에 필요한 의석 3분의 2(50명)를 넘긴 56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날 가결된 총무원장 불신임안은 오는 22일로 예정된 원로회의 인준을 거쳐야 효력이 발생한다. 원로회의 인준은 원로의원 24명 중 과반인 12명 이상 찬성해야 가능하다. 원로회의가 인준하고 이를 종정예하에 보고하는 과정을 거치면 설정 총무원장은 그 즉시 직을 상실하게 된다. 용퇴를 촉구하는 종정 진제 스님의 교시까지 나와 있는 상태라 불신임안이 원로회의를 통과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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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 총무원장이 물러나게 되면 종헌종법에 따라 총무부장인 진우 스님이 총무원장 대행으로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후임 총무원장 선거는 설정 스님이 해임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러 결정해야 한다.

불신임안이 가결된 직후 중앙종회 수석 부의장인 초격 스님은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면서"도 "종회의원 스님들이 현명한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스님은 "모두들 안타까운 심정이었고, 결과에 대해 침울했다"고 회의장 분위기를 전하면서 "종회에서 통과가 됐고, 종정 스님의 교시도 있었기 때문에 최종 결정 권한을 가진 원로회의에서도 인준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설정 스님 집행부에서 보직을 맡고 있는 한 스님은 "아직 원로회의와 종정 보고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오늘 결과에 대해 속단하기는 이르다"면서 "설정 스님이 의혹을 규명하겠다고 말한 상황에서 이렇게 급박하게 종회를 열어 불신임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조계종 사태는 설정 스님을 계속 따라다니던 은처자 문제, 학력 위조, 재산 축적 등 의혹이 지난 5월 한 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본격화됐다. 그 이후 설정 스님 퇴진과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설조 스님의 단식이 41일간 이어졌고, 전국선원수좌회 실천승가회 등 스님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조계종 사태는 혼돈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설정 스님이 16일 이전 퇴진하겠다는 의사를 전국본사주지협의회에 밝히면서 마무리되는 듯싶었지만 다시 이를 번복하면서 결국 불신임안이 상정되기에 이르렀다.

은처자 의혹이 해명되지 않자 중앙종회 직전 '의혹 규명 및 해소위원회'도 관련 의혹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실상 용퇴를 촉구했다. 불신임안 가결로 설정 스님 의혹을 다룬 이후 계속돼온 조계종 사태는 한고비를 넘기게 됐다. 하지만 아직 더 지켜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설정 스님 측과 자승 전 총무원장 측, 그리고 조계종 적폐청산을 주장하는 설조 스님 및 수좌회 측이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혼란이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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