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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사설] 기업 투자 발표도 권력 장단에 맞춰야 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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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오늘 경기도 평택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아 이재용 부회장과 만난다. 김 부총리의 삼성 방문은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14개월 만에 처음이다. 김 부총리는 이 부회장과 간담회에서 규제 등과 관련해 경영 애로사항을 들을 예정이다. 기재부는 애초 김 부총리가 이날 삼성으로부터 투자·고용 계획을 전달받아 직접 발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청와대 측의 제동으로 접었다고 한다. 김 부총리는 올 들어 LG를 비롯한 4개 그룹 방문 당시에는 이들 대기업의 투자·고용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이번 소동이 불거진 건 지난 3일 낮 한 언론이 “청와대가 김 부총리의 삼성 방문에 대해 정부가 재벌에 투자·고용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보도하면서다. 이 언론은 기재부가 청와대 의사를 받아들여 삼성의 투자·고용 계획을 직접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고도 전했다. 기재부는 이날 저녁 이례적으로 김 부총리 명의로 낸 입장문을 통해 “그동안 대기업을 네 차례 만났지만 투자·고용 계획에 간섭한 적이 없고, 정부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대기업에 의지해 투자·고용을 늘리려는 의도도, 계획도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경제 회생을 위해 둘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국에 서로 험구를 늘어놓는 모습이 볼썽사납다.

이번 일은 정부의 반기업 정서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다시 보여준다. 정부 고위 당국자의 방문에 맞춰 기업이 투자·일자리 창출 계획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의 ‘기업 팔 비틀기’로 비칠 수 있다. 청와대가 문제 삼는다고 이미 세운 계획을 취소한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기업의 투자·고용 계획 결정은 권력의 장단에 맞춰서가 아니라 시장원리에 따라 이뤄져야 옳다.

삼성전자는 국내 최대 기업일 뿐만 아니라 글로벌 1등 기업이다. 그런 기업의 수장과 경제 수장이 만나는 일이 이산가족 상봉만큼이나 어려운 현실이다. 삼성이 이럴진대 다른 기업들은 오죽하겠는가. 반기업 정서가 한여름 폭염처럼 기승을 부리는 이런 풍토라면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혁인들 제대로 이뤄질 리 만무하다. 기업 투자가 일어나고 일자리가 생기기를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다. 청와대와 정부는 일자리를 거론하기 전에 자신들의 삐뚤어진 시각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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